▲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문화사업지원팀 차장

이 정도면 국가재난위기다.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7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제 인구절벽은 고사하고 국가의 존폐까지 걱정해야할 판국이다. 하지만 문제는 도무지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저출산은 메아리와 같아 세대를 거듭할수록 인구는 더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청년들이 있다.

흔히 요즘 청년들은 변혁 의지가 부족하다고 한다.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곤 과거 청년들이 주도했던 여러 운동과 저항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청년들은 그래야 한다고, 대항하고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잔혹한 저항을 하고 있다. 바로 제도권에 대한 거부이다. 그리고 그 일선에 있는 것이 결혼과 출산의 거부인 것이다. 현재 청년들이 선택한 이 ‘침묵의 저항’은 그 파급력이 너무도 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국가의 선제적 움직임을 야기했다. 그렇다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청년들은 어쩌다 ‘침묵의 저항’을 시작한 것일까.

그 첫 번째는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관념이다. 우리사회는 아직까지도 미혼모에 대한 의식이 부정적이다. 미혼모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많을뿐더러 결혼과 출산을 달리 생각하지 않는다. 90% 이상의 청년들이 결혼 후 출산을 한다. 거의 대부분인 것이다. 결혼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출산은 결혼을 해야만 할 수 있다고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별개다. 한 때 심각한 저출산으로 문제가 됐던 프랑스는 이를 극복한 방안 중 하나로 결혼문화의 경직성 타파를 꼽았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란 것이다. 결혼의 유무와 관계없이 아이를 낳는 그 자체가 축복받는 문화, 그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국가 정책의 일관성 부재이다.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고, 노후를 맞이하기까지 국가의 정책을 관통하는 비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정권이 바뀌고, 또 정권의 의지에 따라 정책은 바뀌기 일쑤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책 속에서 청년들은 무엇을 신뢰해야할지 알 수 없다. 신뢰의 반대는 불신이다. 불신이 깃든 마음은 결코 쉬이 돌아서지 않는다. 지금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으로 문제에 대한 풀이가 잘못됐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무엇을 해줄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바로 ‘무엇을 함께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지금 국가와 사회는 청년들을 그저 안타깝거나 답답한 존재로 인식한다. 이러다 보니 청년 정책은 대부분 일회성 또는 복지사업에 머물러 있다. 퍼주거나 달래는 식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당당히 사회의 주체로서 함께하길 원한다. 눈앞에 놓인 떡에 집착할 만큼 결코 어리석지도 어리숙하지도 않은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비단 청년뿐 아니라 모두가 살기 힘들다고 한다. 청년실업률보다 더 심각한 노인 빈곤율은 물론 중년층의 노후 또한 순탄해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청년 문제에 집중하는 건 이들에게서 미래를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청년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상황과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들의 ‘침묵’속에는 분명 ‘절규’가 있을 것이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문화사업지원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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