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통과한 울산 산재전문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동구를 제외한 4개 구·군이 사활을 걸었다. 구·군이 설득전을 펼쳐 공공병원을 자기 지역으로 유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거나 순수성이 변질된다면 곤란하다. 최근 구·군의 유치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부작용까지 우려된다. 4개 구·군은 유치위원회를 발족했거나 이미 서명운동에 돌입했고,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해 불을 지피고 있다.

보통 큰 공공기관의 유치는 지방정부라고 할 수 있는 광역자치단체의 자치기반을 확장하고 시민들의 권익을 드높이는 초석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광역자치단체 아래의 기초자치단체간 유치전은 자칫 기초단체장들의 치적쌓기로 이어져 행정력과 불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광역시의 나눠주기식 공공시설 배분은 때로 엉뚱한 곳에 건물을 짓거나 기능과는 상관없는 화려한 건물을 세우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기초단체간의 과열 유치전은 정치권으로 연계되고 선거와도 연동돼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수반한다.

울산시가 울주군 옛 청사를 매입해 노후공공청사 복합개발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 이선호 울주군수가 ‘울산 산재전문 공공병원의 울주군 유치를 결정해주지 않으면 매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데 대해 논란이 많다. 국토부가 지원하는 노후공공청사 복합개발사업에 코를 걸어 울산 산재병원 유치전을 끌어들이는 그 시도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울산시는 이 노후공공청사 복합개발사업과 함께 군청사 부지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시행한다.

울산 산재전문병원은 ‘중증 산재 환자 전문 치료 및 직업병 분야 연구·개발’이라는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풀어보면 이 병원의 산재환자는 중증이어야 하고 그 치료는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유치전을 보면 정작 중요한 산재환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유치 대상인 산재병원과 기초단체장만 보인다. 바꿔말해 기초단체장의 눈에는 산재병원 입지만 보일 뿐 환자는 안 보인다는 것이다.

산재병원 입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대부분의 산재환자가 발생하는 공단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리하고 과열된 유치전이 산재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일부 기초단체장이 정치적인 치적쌓기에 매몰되면 광역시민들을 함정으로 빠트릴 수 있다.

산재전문병원의 입지는 최종적으로 울산시와의 협의를 거쳐 근로복지공단이 결정한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근로복지공단이 최종 결정한 부지가 적정한지 다시 한번 검증한다. 기초단체장들이 유치전에 앞서 산재환자들을 먼저 헤아리는 성숙함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