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폐사지 언덕에 탑이 우뚝하다. 멀리서 바라보니 저 혼자 쓸쓸하다. 눈길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산모롱이를 돌아 창림사지 삼층석탑과 마주한다.

1976년 복원하면서 기단부에 새로 다듬어 끼운 돌이 많다. 하지만 경주 남산에 남아 있는 석탑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조각 수법이 화려하여 보물 제 1867호로 지정되었다.

8세기 서라벌 땅은 흥성했고 남산자락은 불국토를 이루었다. 넘치는 여유와 예술혼으로 창림사지 석탑의 위층 기단에 팔부신중을 새겼다.

팔부중은 부처가 설법하는 자리에 항상 따라다니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4구만이 남아있다. 그중 돋을새김한 아수라 상은 생생하다. 구름을 타고 앉아 좌우로 천의를 흩날리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하늘에 오를 것 같다.

▲ 기단부의 아수라상

단단한 근육, 머리에 쓴 사자관을 보니 ‘아수라 백작’ 같은 두 얼굴을 가진 악의 무리도 무릎을 꿇리고 사바세계의 무거운 짐도 이고지고 앞으로 나아갈 기세다.

불혹을 넘긴 추사가 이곳을 찾았을 때, 탑은 이미 무너져 버린 뒤였다. 얼굴 셋에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자랑하는 아수라마저 반쯤 땅속에 묻혀 천의 자락만 삐죽하게 나와 하늘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추사는 황량한 절터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

▲ 창림사지삼층석탑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겨울 한복판을 건너온 땅은 부풀어 웅성웅성 일어나고 있다.

나는 석탑 앞에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설법 한 구절을 듣는다. ‘맵찬 눈보라를 묵묵히 견뎌야만 복숭아 살구꽃이 터져 봄은 쏟아지느니라.’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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