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용락 남구고래문화재단 이사

지난달 확정된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가 요즘 주요 이슈다. 오는 2022년까지 총 175조원을 들여 지역발전을 이끈다는 내용과 총 23개 사업, 24조원 규모의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는 사실을 놓고 지역마다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탈락된 지역의 아쉬움과 원망도 크지만 ‘울산외곽순환고속도로’와 ‘산재전문 공공병원’ 설립사업이 포함된 울산으로서는 2개의 지역 숙원사업이 한꺼번에 결실을 보게 돼 축하 일색이다.

문제는 모든 시민들의 공감을 뒤로한 채 기초단체들이 앞다투어 ‘산재전문 공공병원’ 유치를 위한 여론전에 뛰어들었다는 데 있다. 물론 지자체마다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일부에서는 과열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후유증마저 우려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앞선다. ‘산재전문 공공병원’에 대한 구체적인 형태는 물론이고 규모나 형식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자체마다 ‘일단 질러 보자’는 식으로 유치전에만 관심을 보일 경우 자칫 지역갈등만 조장할 뿐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에 관한 얘기가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피로스 왕이 강적인 로마군과 싸워 두 번 승리하고 세 번째 싸움에서 패해 망했다는 얘기다. 너무 잦은 전투로 유능한 장수들과 부하들을 잃었기 때문에 두 번의 승리도 어찌 보면 상처뿐인 영광이자 이기고도 진 싸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너무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이익을 ‘피로스의 승리’라 일컫는데, 지금 울산 지자체들의 산재전문 공공병원 유치전을 보면 딱 그 짝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마를 이겼을 당시 피로스 왕은 “이런 승리를 한 번 더 거두면 우리는 끝장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깊이 새겨볼 만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산재전문 공공병원은 사업비 2300억원을 투입해 16개 진료과목, 300병상 규모로 운영하고 연구센터도 들어선다는 것이다. 치료와 재활이라는 본래 기능 외에도 다양화하는 산재 유형과 직업병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도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대표 산업이 있는 울산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들 작업 환경과 산재와 관련해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다며 향후 산재전문 병원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산재전문 공공병원이 울산과학기술원이나 어디든 함께 이런 부분을 연구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산재를 막기 위한 환경조성 등에 대한 연구는 산업적으로도 매우 긍정적 가치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남구 시·구의원과 자생단체 회원들이 울산 산재전문 공공병원 유치를 위한 구민 유치위원회를 발족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골든타임 등을 내세워 차별화를 강조하는 한편 산재전문 공공병원 설립장소가 확정될 때까지 서명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어찌됐건 지금은 사사로운 득실을 따지거나 정략적 이해관계를 논할 시점은 아니라고 본다. 시민들의 공공의료 수요를 어떻게 구현시킬 지부터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울산 전체의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인해 울산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심각한 지경이 아닌가. 물론 지자체마다 나름대로 강조하고 있는 산재전문 공공병원 설립요건의 논리적 분석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접근성이나 당위성, 합목적성, 지역 균형발전 등을 충분히 고려하는 일은 마땅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바로 울산의 미래를 위한 성장 잠재력을 일깨우고 그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의 갈등만 조장시키는 불쏘시개가 된다거나 설립 후 자칫 경쟁력이 떨어져 예산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임용락 남구고래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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