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서생면에 가면 서생포 왜성이 있다. 임진왜란의 초기인 1592년에 왜장 "가도오 기요마사"가 인근에 있던 서생만호의 조선성을 허물고 그 돌로 1년만에 조선인을 강제 동원하여 쌓은 조선 침략 전진기지였다.

 작년 여름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성곽 주위를 측량하고 있는 5~6명의 일본인이 있어 영어로 말을 걸었더니 한자로 필답을 원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일본 오사카 대학 토목과 학생들로서 방학을 맞이하여 이 성을 측량하러 왔다고 했다.

 금년 여름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일본어 관광안내원으로부터 "왜성의 연구(성곽담화회, 일본·대판)"라는 일본어로 된 책을 샀다. 이 책은 임진·정유재란의 7년 동안 일본군이 우리나라의 남·동해안에 쌓은 28개의 일본성의 축성과정과 구조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왜성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사 가지고 간다고 했다. 그 안내인 말로는 일본인 대학교수, 공무원, 사회인사 등이 주로 왜성을 많이 찾는데, 한국에 있는 일본성과 한국사정에 대하여 너무 자세히 알고 있어 섬뜩해 질 때가 많이 있다고 했다.

 서생포 왜성은 지난 97년 울산시 문화재 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해마다 많은 일본 관광객이 찾고 있어 울주군에서 보수, 복원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에 있다. 지난 8월6일에는 ‘한·일 공동 서생포왜성 측량조사단’이 울주군수를 예방하고 8일부터 5일간 정밀 실측에 들어갔다.

 해방 58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의 광복절을 목전에 두고 필자는 일본인이 400년 전 조선 침략의 유적인 서생포 왜성을 복원하기를 열망하고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무고하게 희생된 자기나라 민간인의 억울함만 강조하고 있음은 물론, 일본군 자위대가 해외분쟁지역에 파병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 일련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우울해지면서 걱정이 앞선다.

 지난 8월6일 미국의 CNN방송은 올해로 제58주년이 되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기념하여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묵념 사이렌 소리에 길을 가던 시민들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묵념하는 모습과 평화의 비둘기를 상공에 날리는 장면을 뚜렷하게, 그리고 동정적으로 보도했다.

 무릇 한 국가의 국방과 경제가 튼튼할 때에는 국민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단결하여 외세의 침범을 무찌르고 자주국권을 향유할 수 있으나, 국민이 서로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로 분열할 때에는 외침을 막지 못하고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나라도 국민이 합심하여 외세를 무찌른 고구려, 고려시대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기도 하였으나,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일본인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한 부끄럽고 통한의 역사도 있었다. 일본인이라 하면 지금도 얼굴이 벌겋게 붉어지면서 분노로 가쁜 숨을 내쉬는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을 자주 만나고 있는 보훈공무원으로서 그분들의 한이 언제나 풀릴 수 있을 지 기다려진다.

 우리는 국권 상실의 치욕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최고지도층부터 말단까지 곳곳에서 편을 갈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를 외쳐대는 오늘의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반성하고 이번 광복절에는 국민 모두가 나라사랑을 위한 한마음의 단합된 자세를 갖출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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