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 불빛 눈부셔/ 고개를 돌리다 봅니다// 사람이 귀가 밝아야지// 아침 밥상에서/ 어머니께 받아 마신/ 막걸리 잔을 닮은// 빤히 쳐다보아도/ 눈 부시지 않은/ 정월 보름 환한 달빛// 느지막이/ 거실에 차리는/ 나물 안주에 막걸리/ 뽀얀 술잔 위에도// 달이 뜹니다 ‘달 뜹니다’ 전문(김덕곤)

오늘(19일)은 정월대보름이자 우수(雨水)다. 눈 녹아 비(雨)가 되고 얼음 녹아 물(水)이 된다는 우수와 올해 가장 큰 ‘슈퍼 문’이 뜬다는 정월대보름이 겹치니 울산 곳곳이 벌써 축제 분위기다. 전날부터 우수를 기념하는 비가 내리더니 보름날 저녁에는 구름이 걷히고 둥근달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 모양이다. 옛부터 우리 화가들은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의 구름을 그려 달을 드러내게 했다. 이름하여 ‘홍운탁월(烘雲拓月)’. 보름과 우수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예술 세계다.

산에 사는 스님이 우물속 달빛이 좋아서(山僧貪月色)
항아리에 물과 함께 달을 가득 담았네(竝汲一甁中)
절에 돌아와서 비로소 알았다네(到寺方應覺)
물을 쏟고 나면 달빛도 사라진다는 것을(甁傾月亦空)
정중월(井中月, 이규보)

▲ 정중월(井中月)

지난 2009년 연인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신 영화 ‘호우시절(好雨時節)’은 꽝꽝 얼었던 두꺼운 얼음장이 풀리고 하늘에서는 매서운 눈보라가 순한 봄비로 떨어지는 우수(雨水) 즈음의 이야기다. 정우성, 고원원 두사람의 첫 데이트와 첫 키스… 사랑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시절을 알고 온 걸까(好雨知時節). 영화는 중국 출장 첫날 두보(杜甫) 동상의 손을 만지면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을 예고한다. 우리나라 가사 ‘수심가’에 ‘우수 경칩에 대동강이 풀리더니 정든 님 말씀에 요 내 속 풀리누나’이라는 대목이 있다.

단비는 내릴 때를 스스로 알아(好雨知時節)
봄을 맞아 내리니 만물이 돋네(當春乃發生)
바람 타고 밤에 모르게 내리어(隨風潛入夜)
가랑비 소리 없이 모두 적시네(潤物細無聲)
춘야희우(春夜喜雨, 두보)

단비가 흠뻑 내린 대지 위로 오늘 저녁 쟁반만한 큰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으면 좋겠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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