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변해가는 명절풍속에 씁쓸
인화 중시한 조상들의 上敬下愛등
훌륭한 정신 민족훈으로 전파해가야

▲ 서태일 말레이시아 알미늄(주) 공장장

올해 설날은 고향에 가지 못했다. 해외에서 보내는 설은 늘 아쉽다. 일가들이 모여서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리고, 오랜만에 옛 이야기들을 나누고, 세시 풍속을 즐기며 정을 나누는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명절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 못해서 은근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격언처럼 되지나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지금까지 수십 번의 설을 쇠었음에도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추억은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러 다니던 일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예를 다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 공경을 받는 것도 더 없이 즐거운 일임을 이제는 안다.

반면 이곳 말레이시아에서 설을 보내면서 두 나라의 풍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우리의 명절이 대부분 중국에서 전해진 것처럼, 말레이시아의 총인구 분포 중 약 25%를 차지하는 중국계는 최고 명절인 Chinese New Year(중국 설)을 쇤다. 필자가 이곳에서 근무를 한 기간을 더하면 6년이 넘는다. 첫 부임은 15년여 전이다. 짧은 기간에 느낀 단편적인 비교가 아니라 수년에 걸쳐 지켜본 결과 이들은 아직 유교적 전통을 지키는 반면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이곳 중국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설, 청명(淸明) 과 한식(寒食), 단오(端午)를 즐긴다. 반면 우리의 추석은 즐기지 않는다. 다만 추석 때 월병(Moon Cake)을 서로 나누는 관습은 아직도 다소 남아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고향 방문이다. 우리는 설과 추석이 되면 가능한 늦게 고향에 갔다가 명절 행사가 끝나면 가능한 빨리 돌아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또 일부는 아예 명절을 쇠지 않고 긴 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해외여행이나 국내 가족여행을 하기도 한다. 전통을 지키려는 정신보다 개인적인 편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중국계 사람들은 명절 전에 가능한 빨리 고향으로 가고, 명절을 쇠고도 가능한 늦게 돌아오려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집안 어른들과 고향의 친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유교적 풍속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든 탓인지 개인주의적으로 변모해가는 우리의 세태에 비해 전통을 지켜나가는 그들의 풍속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는 특히 여자들의 명절증후군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차례 음식 준비나 일가들의 대접 때문에 여자들이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즈음은 여자들이 공부와 취업 때문에 전통 예절이나 음식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불편함이 많을 것이다. 음식준비는 주로 연로한 어른들이 하시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미안하기도 할 것이고,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누이·동서들간 갈등도 적잖이 발생한다. 시댁 가거나 오래 머무는 일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내리 사랑’이라고 했다. 윗사람은 아래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보살피고 지도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이는 인화(人和)의 중요성을 가르친 것이다. 우리 민족 최고의 리더십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이 이런 인품을 가진 집안에는 상경하애(上敬下愛)의 정신이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사회가 개인주의로 변해도 부모자식간의 관계와 직장에서의 상하 관계는 없어질 수가 없고, 그 때문에 상경하애의 가르침은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한 정신으로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인격의 개체를 존중하는 것과 이로 인해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사람마다 직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집안에 가훈(家訓)이 있고 회사에 사훈(社訓)이 있어 그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정신이 되듯이, 우리 민족에게도 민족훈(民族訓)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세계인이 인정하고 존중하는 훌륭한 민족정신을 갖도록 교육하고 대대손손 전파해갔으면 좋겠다. 외국인들이 비웃는, 쉽게 끓고 금방 식는 냄비 같은 정신이 아닌 고결한 정신 말이다. 서태일 말레이시아 알미늄(주) 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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