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체류하며 보낸 한 달
짧은 여행과는 다른 감흥 느껴
역사적 과오 끝없는 성찰 눈길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이국적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약간의 정서적인 설렘을 일으키는 말이다. 그래서 자연풍경이나 건축물 같은 시각적인 대상은 물론이고 예술품이나 음식 같은 것에도 이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색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대한다.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에서의 느낌을 최고의 경험으로 여기는 것도 이와 같은 정서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은 익숙한 일상을 바탕으로 한 가벼운 경험일 때 그러하다. 해외에서의 생활은 여행과는 다른 체험과 긴장을 동반한다. 독일에서 보낸 지난 한 달은 이국적이라는 말이 가져오는 정서를 다른 모습으로 체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일은 우리와는 다른 행동양식을 익히는 일이었다. 가장 흔한 도로 통행에서도 당황하는 일이 일어난다. 교통신호등이 없는 작은 골목길 건널목 주변에서 사람을 기다리느라 서 있었다. 갑자기 양방향의 차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까닭인지 알 리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할아버지 한 분이 유리창을 내리고 지나가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할아버지들이 이해심이 많고 친절하다. 건널목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차는 정지해야 한다. 뒤에서야 알았다. 차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본받을 만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운전할 때에는 늘 하는 버릇대로 눈치껏 지나가고 말았다. 옆에 타고 있던 교포가 놀라면서 충고했다. 독일에서 운전하기 힘들겠다고. 은행일의 과정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 가서는 상담 일자를 예약했다. 통장 하나를 개설하는데 상담을 해야 하고 그것도 5일 후에 다시 와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은행계좌 개설의 상담 과정이 마치 돈을 빌리는 절차 같았다. 20여분 이상 통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여러 번의 서명이 있은 후에야 절차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기다리면 통장번호가 편지로 통지된다. 내국인도 똑 같은 절차라고 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하면 고객을 무시한다고 항의라도 나올법한 정도였다. 5일이라는 대기 기간은 상담사의 노동량과 업무계획을 고려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며칠이면 해결될 인터넷 설치도 신청한 후 정확히 2주가 걸렸다. 그것도 정확히 언제 방문할 지는 편지로 통보해 왔다. 설치기사가 방문할 시 부재중이면 50유로의 벌금을 내야하고 다음 예약 기간은 4주 후에나 가능하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설치기사가 온다는 날은 꼼짝도 못하고 집에 있어야 했다. 우리처럼 바쁘면 저녁에라도 와서 설치해 주는 편리함은 절대 찾을 수 없는 나라다. 고객의 편리함보다 근로자의 노동조건을 우선시하는 이 나라의 서비스정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객이 가장 많이 찾는 시간인 일요일에 백화점은 문을 닫았다. 이 나라의 기업가나 상인들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시가로 몰려드는 일요일에 백화점을 열어야 하는 것은 영업의 상식이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국가가 법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일요일에 영업장을 열면 근로자들에게 평소보다 몇 배의 임금을 지불하게 하여 되도록이면 휴일 근로를 자제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도 유럽 최강의 경제대국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해되지 않는 일은 또 있었다. 독일에 와서도 TV는 주로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는 경우가 많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흐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채널에서는 한 달 이상 하나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 과정과 그 원인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모든 전개 과정이 히틀러의 등장과 몰락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다 몇 주를 연속해서 똑같이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라의 아픈 역사를 왜 기념일도 아닌 일상 속에서 저렇게 지속해서 방송하는 것일까. 혹시 지난 역사를 재조명한다거나 역사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미명하에 분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영어권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더빙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강국이 된 지금도 지난날의 과오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는 이 나라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생각이 깊어진다. 하나 분명한 것은 시민들이 그 방송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본다는 것이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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