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관용·신뢰의 사회 희망한다면
구조적인 질곡과 폐단에 항거해야
개선의 희망 품고 봄편지 띄워본다

▲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로 시작되는 봄편지는 우리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동요이다. 특히 울산시민에게는 친숙하다. 학성공원에는 이 동요를 쓴 아동문학가 서덕출 선생의 노래비가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학성공원으로 가서 이 시비 아래에서 백일장에 낼 글을 구상하였다.

서덕출은 1907년 중구 교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런데 1912년 대청마루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는데 염증치료가 잘 되지 않고, 오히려 척추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평생 불구로 지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혼자서 신문과 잡지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선생의 부친은 ‘시대일보’ 기자이면서 한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였는데 장남에게 문학적인 천품을 물려주었다.

봄편지는 1925년 ‘어린이’라는 잡지에 실렸는데 “겨레에게 희망을 주는 노래”라고 하여 큰 환영을 받았다. 버들잎에 우표를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편지를 보고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 옵니다’라는 구절은 식민치하에서 독립을 갈구하는 겨레의 마음을 대변한 절창이다.

봄편지 못지않게 내가 좋아하는 선생의 동요는 ‘송이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로 시작하는 ‘눈꽃송이’이다. 겨울에 눈이 올 때 자연스럽게 이 동요가 입가에 맴돈다. 눈이 내려와 온 동네에 쌓이는 모습을 누구도 이 동요보다 정확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게 노래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사실 최근 울산에는 겨울에 눈이 그다지 많지 않다. 어릴 적 집을 둘러싼 대나무가 눈을 맞고 휘어져서 터널을 만들던 광경은 다시 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선생이 편지를 보내던 강남의 제비도 찾아오지 않는다. 제비가 와서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쳐서 먹이를 가져다주면 제비새끼들이 빨간 주둥이를 내밀고 지지배배 쫑알거리며 서로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하던 풍경이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제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제는 우리의 자연환경이 회복되고 사라져가는 생물들이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형된다.

겨울의 찬바람을 맞다보면 봄이 어서 왔으면 하는 희망을 누구나 가지게 된다. 특히 추운 날씨 속에서 병으로 아프거나, 직장이 없거나,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벌이가 시원찮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개선의 희망을 가지고 늘 기도한다. 사람들은 날마다 봄편지를 써서 띄우고 있다.

울산에는 서덕출 작가 이외에 여러 이름난 작가들을 배출하였다. 특히 오영수는 1909년에 언양에서 출생하여 향토의 사람들과 풍경을 정겹게 그려내었다. 선생의 ‘갯마을’과 ‘메아리’ 등은 20 세기 한국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재경울산향우회에서는 서덕출 선생님과 오영수 선생님을 ‘자랑스러운 蔚山人’으로 선정하여 업적을 기린 바 있다. 대작가들의 문학정신과 예술혼은 우리 시민들과 함께 살아있다.

나도 편지를 써서 띄우고자 한다. 나는 편지 속에 우리 사회의 성숙된 모습을 기원한다. 첫째는 마음의 평화이다. 시민들이 의식주에 넉넉하고 걱정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둘째는 관용이다.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작은 실수를 용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셋째는 신뢰이다. 약속이 지켜지고,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께는 3·1절 100주년으로 국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100년 전에 대한독립을 외쳤던 선인들의 정신을 다시 기렸다. 그때의 독립 외침은 우리의 정신과 행동을 억압하고 짓누르던 식민주의자,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항거였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을 움츠리게 하고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구조적인 질곡과 폐단에 대해 항거하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봄편지를 외우고 또 새로 써본다.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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