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예술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는 국민테너 엄정행. 그와의 인터뷰가 (사)연우엄정행음악연구소(양산)에서 진행됐다.

화려한 서울 무대 벗어나
고향인 양산서 지냈지만
음악의 열정 함께 나누며
순수음악 지키려 노력

울산예고 교장직 제안
고사하다 1년만에 수락

아이들 문화도시 안에서
어릴 시절부터 예술 익혀
한 도시의 자양분 되도록
지속적 영감·용기 주고파

한때 한국의 클래식은 ‘우리 가곡’이 있어 전성기를 달릴 수 있었다.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도 ‘목련화’ ‘그리움’과 같은 우리 가곡 한 두 소절은 거뜬히 불렀다. ‘국민테너’ 엄정행(76)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이름 석 자가 들어있는 ‘가곡의 밤’ 객석은 요즘의 인기대중가수 콘서트 못지않았다. 언제나 뜨거운 환호가 이어졌다.

하지만 경희대를 정년퇴임한 뒤 2008년 데뷔 40주년기념 독창회를 기점으로 그의 근황은 더이상 예전만큼 접하기 어려워졌다. 화려한 서울 무대를 벗어나 고향인 양산으로 돌아 와 그의 말처럼 ‘시골’에 파묻혀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순수음악 지킴이로서의 역할은 단 한번도 쉰 적이 없다. 조용히, 끊임없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퍼뜨리며 우리 가곡과 클래식 연주가 지역에서도 이어지도록 애써왔다.

그러던 그가 이번 달부터 울산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됐다.

학교법인 예일학원 울산예술고등학교의 교장이 된 것이다. 4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엄정행’은 국민 성악가에서 순수음악 전도사로, 문화예술 교육자로, 울산에서 묵직하면서도 새로운 발걸음을 떼게 됐다.

엄정행 교장은 “3년 전 한달에 한 번씩 울산예고를 찾아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과 만나왔다”며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음악 이전에 인성을 갖추는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기교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특강과 시연을 통해 아이들과 교류하며 큰 보람을 느꼈었다”고 말했다. 황우춘 예일학원 이사장과의 오랜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발 더 나아가 울산예고 교장직을 제안받았다.

처음에는 수락하기 힘들었다. 현역을 떠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게 옳은 일인가 고민했다.

▲ 울산예고에 둥지 튼 국민테너 엄정행

그렇게 1년 여의 시간을 고사했지만 결국에는 뜻을 받아들이게 됐다. 순수음악, 특히 우리의 노래인 가곡이 발디딜 무대가 줄어들어 안타까웠고, 한평생 몸받쳐 온 성악가로서 더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결심했기 때문이다.

엄 교장은 “이사장, 교사진, 학부모까지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줄 분들이 많아 용기를 냈다. 아이들을 울산 안에서 예술과 문화를 배우고 익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이어 “스포츠계에 유소년팀이 있는 것처럼 우리 문화예술 쪽에도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익히고 연마해 한 도시의 자양분이 되도록 많은 분들의 지혜와 힘을 빌려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엄 교장은 “입학식 직후부터 울산지역 중학교를 차례로 방문해 예술의 조기교육 중요성과 이같은 일이 울산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시켜 나가려 한다”고 했다.

엄 교장에게는 요즘도 ‘무대 위 국민테너’로서의 모습을 다시 보여달라는 제안이 이어진다. 하지만 제안이 올 때마다 정작 “두렵다”고 했다. 옛 시절 기억하는 팬들에게 미안하고,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알리는데도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을 교육하며 울산 전체에 예술에 대한 애정이 넘치도록 돕는 봉사자 일 뿐”이라고도 했다.

무엇보다 엄 교장은 “좋은 기억이 많은 울산에서의 임무가 그래서 한편으론 설렌다”고 했다. 이어 “나를 보며 노래를 부르고 꿈을 키우는 아이들과 젊은이가 주변에 아직 많다”며 “그들에게 지속적인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실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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