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개념의 격차만 확인한 북미
우리정부도 막연한 미사여구 대신
核관련 확고한 태도와 국민합의를

▲ 김주홍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60여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중국을 거쳐 베트남에 나타난 김정은은 피로와 긴장에 절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가야 한다는 절박함, 또는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회담 첫 날 그의 표정에서 진하게 묻어났다. 북·미 간 실무회담과 고위급회담을 거치는 동안 희망 섞인 여러 전망들이 난무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경협을 한국이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는 의견을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참담하게도 아무런 결과도 약속도 없이 정상회담이 끝났다. 회담 실패의 원인으로 제재완화 교환조건에 관한 이견, 코언(M. Cohen) 변호사 청문회를 비롯한 트럼프에게 불리한 미국 국내정세, 베네수엘라 문제나 인도·파키스탄 간 무력 충돌 등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적대적 비방이나 성명을 자제하면서 ‘제재완화의 교환조건’에 관한 이견으로 회담실패 원인을 한정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북·미 양측의 태도가 눈에 띈다. 여기서 희망의 불씨를 살리려면 이번 하노이의 실패를 ‘제대로 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회담에서 지금까지 모호했던 부분, 즉 비핵화의 개념과 교환조건, 그리고 협상범위 등의 윤곽이 분명하게 잡혔기 때문이다. 회담 실패 이후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자.

우선 트럼프 미 대통령은 비핵화를 “완전하고 비가역적인 비핵화”라고 명확히 언급하였으며, 그것은 “(북한이) 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영변 이외의 숨겨진 핵시설’까지 그 대상에 포함시켰다. 게다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사일, 핵탄두, 무기체계, 목록작성 및 신고’ 등까지 언급하였다. 반면 북한 외무성 부상인 최선희는 “(북한이) 아직까지 핵시설 전체를 폐기대상으로 내놔본 역사가 없다”고 전제하면서 ‘제재 완화의 대가는 영변 폐기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중지와 영변핵시설 폐기를 비핵화의 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향후 냉각기가 불가피할 것이다. 게다가 북한, 미국, 중국은 국내 정치 일정 또는 국내 정치 사정이 바쁘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분명해진 것은 북·미 양측의 비핵화 개념이 차이가 크고, 이러한 차이를 그대로 두고는 협상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향후 북·미 협상은 비핵화의 개념과 범위를 둘러싸고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회담에 대응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와 남북경협의 선후관계를 논리적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 ‘평화가 경제’라는 둥, ‘경협이 미래’라는 둥 공허한 구호를 앞세워 국민들에 대한 ‘희망고문’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핵의 구체적 내용, 즉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 현황, 파악된 핵시설 및 숨겨진 핵시설 등에 관하여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리고, 문재인 정부가 규정하고 있는 비핵화의 개념과 내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밝혀야 한다. 지금은 수천만 국민들의 생존과 재정적 부담이 걸린 문제를 정부가 대국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하노이 회담의 실패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한 대북제재가 풀릴 가능성이 없으며, 미래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핵을 포기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 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입장을 두둔하느라 당한 외교적 수모만으로도 그 명분은 차고 넘친다. ‘신한반도 체제’는 그 다음이다.

김주홍 울산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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