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지난 6일이 경칩(驚蟄)이었다. 이제 곧 선정(禪定)에 잠겼던 뭇 생명들도 하나 둘 깨어날 것이다. 깨어나, 선정을 통한 크고 작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겨울 선정에 잠겼던 스님들의 동안거(冬安居)는 이미 지난달에 해제되었다. “화두일념이 지속되어 일념삼매(一念三昧)의 과정이 오지 않으면 ‘나’라는 생각의 분별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진리의 문을 통과할 수 없다.” 화두일념을 통한 일념삼매가 올해 동안거 해제 법어의 키워드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웨그너는 “‘나’라는 생각의 분별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며 따라서 행복에 이르는 길은 자기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을 포함하는 듯하다”라고 했다.

화두일념의 선정에 잠기면 우리의 뇌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가바(GABA, r-Aminobutric acid)의 생성과 방출이 증가한다(Anc Sci. 2015(1):13-19). 가바는 감각신호를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가바가 점점 증가하여 일정 농도에 도달하면 두뇌로 오는 자극신호는 모두 차단된다. 두정엽으로 오는 자극신호가 사라지면 공간개념이 사라지고, 전두엽으로 오는 자극신호가 사라지면 의식의 내용이 사라진다. 의식의 내용이 사라지니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고, 시공간의 개념이 없으니 나와 세상의 구분 또한 사라지고 없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범아일여(梵我一如), 뇌 과학이 바라본 일념삼매의 과정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의 실재를 진면목대로 지각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색깔도 냄새도 맛도 없다. 단지 에너지와 물질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처럼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서 오는 감각신호를 바탕으로 세계 안에 있는 대상을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The BRAIN, D. Eagleman).

인위적으로 가바를 증가시켜 자기를 사라지게 하는 약제가 소위 벤조다이제핀계 항불안제다. 이 약은 1933년에 처음 합성되어 의학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지만 심각한 부작용과 신체적 의존이 생길 수 있어 사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평안과 이완의 부작용 없는 명약은 일념삼매를 향한 용맹정진이다. 어느 정도의 이완과 평온은 가벼운 명상만으로도 가능하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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