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 대한 호칭은 관계의 출발점
서로에 대한 존중이 담긴 호칭으로
원만한 인간관계 위한 윤활유 돼야

 

연초 서울에서 열리는 재경 울산향우회 모임에 참석하면 평소 못보던 친구나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다. 향우회 부회장이다 보니 매년 참석한다. 두어해 전 모임에서 몇살 나이가 적은 후배가 오랜만에 보면서 ‘박변, 오랜만입니다’라고 말을 걸었다. ‘박선배’나 ‘박변호사’가 아니라 ‘박변’이라니. 어릴때 한 동네에서 두세살 정도 차이는 무시하고 친구처럼 지낸 사이도 아닌데 별로 유쾌하지 않다. 소리도 하필 왜 ‘변’인가. 평소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당돌한 성격의 인물이라 넘길 수도 있었지만 ‘친구 아닌데, 변이 아니라 변호사야’라고 응대해 준 일이 있다.

흔히 변호사를 부를 때 ‘박변, 김변’처럼 성(姓) 뒤에 변호사 단어 첫음절 ‘변’을 붙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호칭은 같은 직역의 동료들간에 편하게 말하거나 또는 친근하거나 허물없는 사이에서 하는 어법이다. 이러한 부르기는 상황이나 관계에 따라서 거북할 때가 있다. 더구나 후배가 연장자(나이차가 많지 않더라도)에게 편하게 ‘박변’이라고 부르는 것은 좋지 않은 화법이다.

직업, 직책의 첫머리 음절 글자를 성(姓) 뒤에 붙여 부르는 경우는 판사, 검사, 박사 등에 대해서 ‘김판, 박검, 이박’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즉, 사장, 전무, 부장을 ‘김사, 이전, 박부’라고 부르지 않고, 시장, 국장, 과장 등에 대해서 ‘김시, 이국, 박과’라고 하지 않는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을 ‘박통, 전통’ 등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는 화자들끼리 정치적 호불호의 감정(!)이 개입되어 제3자에 대한 호칭 방법일 뿐 앞에 계신 대통령을 그와 같이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을 ‘김국, 이지’ 또는 ‘박의, 정의’라고 부르거나 호칭하지 않는다.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최근 평등의 관점에서 선생님을 호칭할 때 ‘쌤, 님, 프로’를 사용하자고 서울시 교육청이 밝혔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쳤고, 여성가족부에서 처가 식구와 시가 식구를 다르게 부르지 않고 대등하게 부르는 단어를 개발한다고 하니, 호칭은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법조인들끼리 이름 즉, 성명(姓名)중 성(姓)과 직업의 첫음절 글자를 결합하여 부르는 것은 직업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측면이 있다. 발음을 편하게 하려는 이유가 있기도 하다.

사람을 호칭하면서 직위 명칭의 뒤에 ‘님’자를 붙이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 특정한 공사(公私)의 직에 있었던 사람을 부르면서 현재에도 그런 것처럼 직책을 불러 주기도 한다. 공적 방송에서도 그와 같이 과거 직책을 붙여 호칭하는데 ‘호칭 전관예우’나 ‘호칭 인플레’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별다른 직업이나 직책이 없다면 마땅한 호칭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상대에 대한 호칭은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다. 상대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관계의 시작이고. 1차적인 관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이후의 관계는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다. 가끔 병원 방문시 ‘간호사’라고 부르지 않고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불렀을때 좀 더 친절한 간호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평소 늘 ‘박선배님’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갑자기 ‘박변호사님’이라고 호칭을 바꾸면 ‘관계가 변했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친밀한 인간적인 관계가 사무적인 관계로 바뀌는 느낌일 수 있다. 호칭은 감성적 요소도 개입되어 있어 민감하다. 모든 것을 이해 타산하여 관계를 설정하기보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담긴 호칭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호칭 방법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는 윤활 역할을 할 것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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