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동은 본래 강동면 지역으로서 어물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남동 일부 지역과 구암동을 병합하여 어물리라 했다.

 이곳 어물동 방방우골 부채봉산 남쪽 중턱에 미륵삼존불상(彌勒三尊佛像)이 있다. 높이 약 7m, 폭이 약 10m의 자연 암벽에 릴리프(浮刻)로 조각돼 있다. 가운데의 불상은 상반신이 조각된 약사여래불로 높이 약 6m, 폭이 약 4m 가량이고, 한쪽 귀의 길이만 해도 약 70㎝나 된다. 양옆의 불상은 일광과 월광으로 머리 위에 둥근 해와 달이 조각돼 있으며 전신입상이다. 그런데 이곳에 이와 같은 귀중한 불상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불과 70년 전의 일이다. 동쪽 1㎞ 지점에 금천마을이 있고, 그 건너에 구암마을, 해변에는 당사마을, 북쪽으로 복골마을이 있다. 또 이 산기슭에도 방방우마을이 있어 총 200호 가량이 살고 있었고, 이곳 사람들이 모두 이 산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건만 불상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산 이름을 부체봉(부처봉)으로, 또 동쪽의 골짝을 부체골로 부르면서도 사람들은 조상대대로 불러오는 이름이려니 여겨 무심코 그냥 따라 불러왔을 뿐이다. 그저 막연히 옛날 어느 땐가 부처와 관련이 있었나보다 짐작만 했지 그 연원을 캐는 데는 무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황토전 마을에 살고 있던 김불불이라고 하는 불교신자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내가 지금 비바람을 맞고 있으니 덮어다오, 나는 지금 동쪽 십리 안에 있느니라" 했다. 꿈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김불불 신자는 자녀들에게 꿈 얘기를 하고 함께 부처를 찾아 나섰다. 동쪽 십리라 하나 오리도 못가서 바다에 닿게 되니 분명 그 중간에 있으리라 짐작하고 마음 집히는 데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부체봉 외는 더 생각나는 곳이 없어 산 위에 올라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찾았으나 역시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불상이 있는 바위 앞에 이르렀고 기와조각과 토기조각을 발견하여 절터의 흔적을 찾았다. 여기엔 온통 돌담장을 뒤집어 쓴 바위하나가 우뚝 서 있었는데 김불불은 자녀들과 함께 넝쿨을 하나하나 뜯어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벗겨내니 암벽에 조각한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돌담장을 벗기면 벗길수록 완연한 미륵불상이 나타났다. 이윽고 넝쿨을 모두 다 벗겨보니 뚜렷한 미륵삼존불상이었다. 김불불과 자녀들은 환성을 지르며 합장하고 수없이 절을 했다. 마침내 미륵삼존불이 세상에 알려졌고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앞 다투어 구경을 왔으며 경탄해 마지않았다. 이 암벽조각품은 고증결과 신라시대의 유물로 판명되어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됐고 조각을 한 사람은 석굴암의 대가 김대성의 작품으로 비정했다.

 오래 전의 유물이나 유적이 땅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살아 꿈틀거리며 시공을 오간다는 사실에 힘입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물동의 미륵삼존불상도 먼저는 열성신자가 꿈에 계시된 내용을 확신한 것과 나아가 땅이름의 어원에 신뢰를 두고 지명유래를 추적한 결과 마침내 수백년의 먼지를 털어내고 유물을 찾아내는 값진 결실을 맺은 것이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청소년들의 향토애를 고취시키고 후손들에게 빛나는 전통과 긴 역사를 깨우쳐주는 실천교육의 장으로 향토문화유적답사를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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