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눈먼 돈 아냐…국민이 주인
정부의 세금 사용에 엄격한 잣대로
꼼꼼한 감시의 눈길 멈추지 말아야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흔히 세금을 ‘눈먼 돈’이라고 한다. 못 먹으면 바보이고,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도 한다. 세금은 정말 임자 없는 돈인가? 아니다. 엄연히 세금의 주인은 납세자, 즉 국민이다. 국가는 세금을 거두고 사용할 때 국민들의 동의와 승인을 구해야 한다. ‘대표 없이 조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명제는 영국 시민혁명의 대원칙이며, 미국 독립운동의 촉매였다. 하지만 최근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너무도 쉽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계획들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마치 정부가 세금의 주인인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이 자기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를 일일이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서 세금을 잘 감시하도록 한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출발이다. 따라서 국민이 낸 세금을 지켜야할 책임이 가장 큰 주체는 바로 국회이다. 하지만 행정부의 무분별한 예산 편성과 집행을 감시하여 국민들의 세금 수호자가 되어야 할 국회는 이미 그 임무를 포기한 지 오래이다. 이른바 쪽지 예산을 통한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선거운동의 중요한 무기가 되고 있다. 국회가 행정부의 재정운용을 감시하기는커녕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또는 소속 정당의 당파적 사업 챙기기로 세금낭비의 선봉에 서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의의 대원칙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 내의 세금수호자는 예산을 담당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이다. 예산과정에서 예산안을 조정·삭감하는 등 재정운용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것이 기재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기재부도 청와대나 여당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예산 요구를 거절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재부의 예산 수호자 역할의 중요한 무기가 바로 예비타당성 조사이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정부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조사하여 엉터리 사업을 걸러내는 행정부 내부의 세금 안전장치이다. 기재부는 ‘예타’를 통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24조원에 해당하는 거대 규모의 사업들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업들에 국민들의 세금이 대거 투입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세금이 눈먼 돈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예산 지출이 바로 내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납세자인 국민들이 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예타 면제 대상으로 선정한 도로, 공항 건설 사업들은 대부분이 지역에 상당한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들이다. 당연히 해당 지역주민들은 열렬히 환영한다. 그런데 그 비용은 불특정 다수인 일반국민들의 세금에서 조달된다. 사업의 비용이 일반국민 전체에 할당되어 국민 개개인이 인지하는 비용부담액은 제로에 가까워 아무도 내가 비용을 부담한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이 결과 사업에 대한 강력한 지지집단은 존재하지만 반대집단은 보이지 않는다. 찬반이 갈려 큰 갈등을 야기하지도 않는다. 전국을 돌며 지역 현안 해결 또는 균형발전 명목으로 한 두건씩 나눠주면 주민들이 열광한다. 정작 비용을 부담하는 일반국민들은 조용하다.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에게는 꽃놀이패도 이런 꽃놀이패가 따로 없다.

하지만 이런 ‘꽃놀이’의 결과는 뻔하다. 우리는 이미 일부 유럽 또는 남미국가에서 국가재정 파탄의 참상을 목격한 바 있다. 세금은 화수분이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헤어나기 어려운 재정위기에 빠질 수 있다. 세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반국민들이 납세자로서의 의식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세율이 인상되거나 새로운 세금이 부과될 때에는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정부의 재정 지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재정지출 규모의 증가는 당연히 추가적인 세금의 증가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세금 사용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국회와 정부도 더 이상 시민들이 위탁한 세금수호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