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계휴가를 8월 초순 가기로 이미 직장에 신청을 해놓고 지난해 계획했던 남해안으로 여행을 떠날려고 준비하던중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여름테마별 수련회의 프로그램에 "소록도 봉사 체험캠프"가 있었다. 다소간의 망설임 끝에 아내와 나는 비록 여행의 의미와는 조금 상반되지만, 소록도에 가서 봉사도 할겸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8월4일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기대와 설레임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집결장소로 가서 오전 10시 소록도를 향해 출발했다.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4시간 달려 순천IC를 빠져나와 국도로 1시간 가량 걸려 도양이라는 녹동항에 도착했다. 시선 가득히 보여지는 소록도는 푸른 바다와 함께 평온한 모습이었다. 녹동항에서 배편을 이용 소록도에 도착했다. 녹동항에서 소록도까지는 약 5분정도 소요되며 15분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1인당 1천원이고 승용차는 왕복 1만원이었으며,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운행한다고 했다.(동절기는 5시30분까지)

 소록도는 섬의 모양이 어린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했다는데, 섬의 면적은 여의도의 1.5배인 15만평 정도이며 섬전체가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으로 이루어 졌다. 이곳에 한센씨병 환자들이 처음 한 일들은 교회를 짓는 일이었다. 일제치하에서 조선총독부의 기독교 탄압에 따라 소록도에서 교회를 짓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소록도에는 5개의 교회가 있고 2개의 성당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간 동성교회는 1964년 1월에 신축했다고 머릿돌에 쓰여져 있었다. 그당시는 정부에서 교회를 지을 수 있는 좋은 땅을 주지않아 쓸모없는 부지를 주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장비도 없는 상태에서 호미로 쟁기로 돌을 깨고 심지어 밥먹는 수저로까지 돌을 깨고 땅을 파는 그야말로 피와 땀과 눈물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당시 이곳의 나환자수는 만명이 넘었으나 지금은 고작 1천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민들의 평균연령은 74세로 노동은 하지 않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낮에는 주로 주변을 산책을 한다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튿날 우리 일행은 본격적인 봉사에 들어갔다. 남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 건물내부를 도색하는 작업과 건물내외 전기시설을 최신기자재로 교체 보수하는 일, 그리고 주변을 방역하는 일을 맡았다. 어떤 일을 하던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피곤하지 아니하고 재미있다는 진리(?)를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아침 9시경 시작한 작업이 저녁무렵 끝나고 식사후에 간단한 예배후에 한쪽팔이 없으신 80세정도된 장로님의 간증을 듣고는 많은 것을 느꼈다. 아내는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런 불구의 몸에도 얼굴모습은 너무나 밝았고 근심걱정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분들을 보고 나 자신이 지금까지 불평과 불만으로 개인의 이익에만 급급하며 살아온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죄스러웠다.

 마지막날인 3일째 우리 일행은 소록도 박물관과 중앙공원을 견학했다. 이름모를 나무와 형형색색의 꽃들로 아름답게 가꾸어진 그곳에는 일제치하의 잔재들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감금실과 생체실험실, 수술실 등 끔직했던 당시 만행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소록도에서의 2박3일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소중함과 내 자신이 소외되고 병약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행할 때 삶의 진실한 사랑과 행복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 소중하고도 값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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