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관계가 아니면 박차고 나가
형식적 잦은 모임에 끌려다니지 말길
가치 공유할 소수의 동행자로도 행복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오늘도 SNS에서 모임 일정 알림이 계속 뜬다. 이렇게 저렇게 얽힌 친목 모임이다. 군에서 전역하면서 더 생겼다. 전역자 모임(부대도 참 다양하다), 학교 모임(의외로 다양하다), 비상계획관 모임, 최고위 과정, 동기생, 직장, 고향 등등. 가끔 번개 모임도 더해진다. 소중한 모임들이다. 사회생활을 덜 외롭게 해주는 만남들이다. 물론 매번 참석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참석여부로 고민 아닌 고민을 할 때도 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의 카드는 언제나 ‘내’가 쥐고 있다. 불행의 근원은 인간관계에 있다. 거꾸로 말하면 행복의 원천 또한 인간관계에 있다. 관계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연스러운 삶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만남들을 더욱 견고하게 하려고 모임의 규칙을 만든다. 만나는 횟수도 정한다. 그 규칙을 따르려다 보면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게 된다. 타인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여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남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 나의 행복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형식과 체면에 매달린다. 지나고 보면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인 인연임에도 너 없으면 못 살 듯이, 너에게 모든 것을 줄듯이 착각하게 만든다.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나온다’라고 말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관계를 잘 유지하려다 보니 현대인은 항상 바쁘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거의 모든 모임에는 꼬박꼬박 참석하는 이도 있다. 외톨이가 될까 봐 두려운가 보다. 정호승 시인도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수선화에게’ 중에서>라고 한다. 본시 존재 자체가 외로운 거다. 그러나 외롭다는 이유로 관계의 괴로움까지 껴안을 필요는 없다. 행복한 관계가 아니라면 내가 먼저 박차고 나가면 된다. 생각을 조금만 더 자유롭게 한다면, 더 나은 가치를 공유할 소수의 동행자만 있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굳이 집단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생의 계급장을 떼고 소소하지만 따뜻한 만남, 생산적이고 상생하는 만남, 마음이 맞는 이들과 만남이면 족하지 않은가. 혹 우리는 끼리끼리 문화에 젖어서 형식적이고 잦은 모임에 이미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마치 ‘스카이(SKY) 캐슬’ 드라마에서 그들만의 ‘캐슬(城)’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처럼.

필자 또한 누구나처럼 그동안 살아오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곤함과 실패를 살짝 맛보았다. 인생 2막을 출발하면서 이런 만남에 대해 미움받을 각오를 했다. 오늘도 일과 이후에는 직장동료들과 테니스나 탁구로 대부분 저녁시간을 즐긴다. 예전보다 몸과 마음이 훨씬 더 건강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 저녁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모임에는 참석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전엔 그러지 않았다. 모임이 있으면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줄 알았다. 누군가는 ‘과유불급(過猶不及)! 너무 지나쳐도 문제지만 부족해도 탈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이젠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싶다. ‘미움받을 용기’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그리고 이왕 변하려면 알렉산더 대왕이 인간관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박에 끊었듯이 해야 한다. ‘운명이란 전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라고 결연히 외친 것처럼 말이다.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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