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창조와 혁신 강조

행정은 여전히 관행에 의존

현장 목소리와 바람 들어야

▲ 현숙희 무용가 전 영산대 초빙교수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새 문화 정책 준비단’이 1년 3개월여에 걸쳐 준비한 ‘문화 비전 2030-사람이 있는 문화’가 2018년 12월에 마무리되어 발표 되었다. 이 보고서는 2004년에 만든 ‘창의 한국’에 이어 실로 오랜만에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문화 정책의 계획을 담고 있다 한다.

그리고 특히 지난 정부시절 블랙리스트 사태와 작년 들불처럼 일어난 문화예술계 미투운동의 파고를 극복하고 국가 문화정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아주 시의적절한 의미를 지닌다고 새 문화 정책 준비단 단장 이동연은 말한다.

‘문화 비전 2030-사람이 있는 문화’는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이란 가치를 기본 원리로 삼고 있다. 자율성은 개인의 자유로운 문화 활동과 향유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말하며, 일반 개인뿐 아니라 문화예술인 관광 및 문화사업 종사자 ·체육인의 지위와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과제들을 담고 있다.

다양성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이 서로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며 자신들의 문화적 힘을 펼쳐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국적·인종·종교만이 아니라 세대·성·장애 지역을 아우르고 나아가 예술의 크고 작은 집단들이 서로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창의성은 단지 문화콘텐츠 산업을 육성하는 역량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교육, 노동, 복지, 도시재생, 환경, 통일 분야에서 문화가 산업발전과 혁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가치이자 동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3대 가치를 기본으로 ‘문화 비전 2030-사람이 있는 문화’는 개인의 자율성 보장, 공동체의 다양성 실현, 사회의 창의성 확산이란 3대 방향을 설정했다. 3대 방향은 각각 3개의 실천 의제들을 포함한다. 개인의 자율성 보장에는 개인의 문화권리 확대, 문화 예술인 ·종사자의 지위와 권리 확대, 성 평등 문화 실현이란 의제가, 공동체의 다양성 실현에는 문화 다양성의 보호와 확산, 공정하고 다양한 문화 생태계 조성, 지역문화 분권 실현이라는 의제가, 그리고 사회의 창의성 확산에는 문화 자원의 융합역량 강화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 협력 확대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 혁신이란 의제가 담겨있는 것이다.

‘문화 비전 2030-사람이 있는 문화’는 3대 가치, 3대 방향, 9대 의제를 기본 골격으로 47개의 대표 과제와 186개의 추진과제들을 제시하여 2030년까지 국가문화 비전의 큰 그림을 보여주고자 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문화의 가치는 ‘사람’ 그 자체, 다시 말하면 돈과 시설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문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문화정책의 흐름을 완성해 간다는 희망찬 주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문화예술 현장의 체감은 너무도 낮은 상태라는 것이 문제다. 여전히 문화행정에 대해 문화예술인들은 분노하고 있고 문화예술 공무원들은 공무원들대로 블랙리스트의 진실과 치유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공무원 조직의 피로감을 성토하고 있다. 매일같이 창조와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행정혁신에 대해서는 관행에만 의존한다. 문화예술인들은 이같은 문화행정에 지쳐가고 있다. 비전과 문화정책의 흐름 설정도 중요하지만, 현실감 있는 실행 조직 구성과 제도 개선, 문화예술인들의 인권보장 기반 조성을 기본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얼마 전 울산문화재단의 심사 결과에 대한 불만이 토로되고 재심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불거진 것도 이같은 ‘현장에 대한 무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 예술인들은 자신의 예술 장르에서 혹은 사업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고치는 것이 바람직한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업이나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문제점을 타개해나가는 방안을 강구한다.

그러나 작금의 문화예술 현장을 둘러보면 울산지역 문화행정의 구태의연함에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문화예술행정 실행 조직의 전문성이나 문화예술 발전과 혁신을 위한 행정조직의 의지 등 그 어느 하나도 현장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 ‘문화 비전 2030-사람이 있는 문화’는 서류작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호나 문서로 만들어진 행정이 아니라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 나오기를 문화현장에서 물으며 기다릴 것이다. 현숙희 무용가 전 영산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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