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간 갈등으로 인한 분열은
집단의 성과 달성에는 큰 손해요인
리더는 상생의 지혜로 하나된 힘을

▲ 서태일 말레이시아 알미늄(주) 공장장

매화는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고 맑은 향기를 발산한다는 시구가 있다. 사람도 어려움을 극복하면 바라던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이다. 온대지방에서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그 계절에 적응하기가 바쁘다. 계절의 변화는 단지 지구의 공전과정에서 생기는 온도의 변화가 빚어내는 조화이다. 근래에는 짧은 봄, 무더운 여름, 혹한의 겨울과 같이 지구의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를 많이 겪고 있다.

늘 여름 날씨인 말레이시아의 기후 변화는 건기와 우기라고 말 할 수 있다. 그 차이를 경험한 것으로 말하면 건기에는 하루에 한번 가량 소나기가 내리고, 우기에는 한번 이상 소나기가 내린다고 할 수 있다. 이곳도 기후 변화의 영향은 같아서 건기와 우기의 시작과 종료 시점과 현상이 예전과 달리 변화가 많다고 한다. 각기 다른 인종들이 다른 지역에서 자연에 순화하여 살고 있듯이 식물들도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것이 인간과 흡사함을 느낀다. 자연이 주는 기온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동일한 것 같다. 단지, 사람만은 지혜가 있기 때문에 인공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생활하는 것이 다르다.

회사나, 어떤 단체나 국가와 같이 집단(Group)이 있는 곳은 그 집단을 다스리기 위한 규정이나 법이 있다. 모든 집단은 어떤 목표가 있으나 그 목표를 이루는 데는 구성원들의 사고나 방법이 달라서 갈등이 있다. 이런 사고는 학자들의 논리적인 영향을 받거나 종교적인 영향에 기인하거나 간에 그 사고를 추종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그 시대의 사회적 환경이나 리더십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개신교 신학자이며 기독교 윤리학자인 니부어(Niebuhr)는 개인과 집단의 도덕적 이상이 서로 다르다고 보았다. 개인이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은 ‘이타심’이고 집단이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은 ‘정의’라는 것이다. 즉 집단의 부정의 문제를 해결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니부어 사회 윤리의 핵심 목적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극심한 갈등은 그의 논리에 기인된 것인가. 그의 논리를 인용하면 도덕적인 인간으로 구성되는 사회일지라도 그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 있다. 한 개인은 동정심도 있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이타심이나 이해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를 도덕적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집단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몹시 이기적이다. 그래서 한 국가나 계급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도덕도 감행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도덕성은 집단에서 약화되고,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사람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비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쉽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의 논리로 현실과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듯이, 기업의 목적은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도 인정해야 되나 요즘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추가되어 있다.

정치를 하는 이유는 세상을 본인이 꿈꾸는 대로 바꿔 보려는데 있다고 하고 노조의 목적은 근로조건의 개선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있다. 그래서 목적과 뜻이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이 집단에서 존재하지만 그 힘의 분열이 지속되면 그 집단이 성과를 내는 데는 손해이기 때문에 리더들은 하나된 힘이 되도록 노력하여 좋은 성과를 얻도록 해야 된다. 큰 흐름은 처칠의 말처럼 경쟁의 세계에는 두 마디 어휘 밖에 없다. 즉, ‘이기느냐, 지느냐’이다. 경쟁보다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서태일 말레이시아 알미늄(주) 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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