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손녀 김계숙씨, 조부 명예회복 자료수집차 본보 찾아

“만세운동 도모하다 잡혀 혹독한 고문…후유증으로 요절

자랑스런 할아버지 이야기, 가족들 해가 될까 숨겨온듯”

▲ 만세운동을 도모하다 잡혀 고문당한 김인석의 손녀 김계숙씨가 경상일보 1면에 실린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사를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열세살 소년투사이자 울산의 독립운동가인 김인석이 우리 할배입니다. 그 분 이야기를 아시는 분, 누가 더 없습니까!”

김계숙(65·부산 망미동 거주)씨는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에 살았던 김인석(金仁錫·1906~1926)의 친손녀다. 그의 조부 김인석은 100년 전 1919년 4월 온산에서 거사를 도모하다 안타깝게 실패한 온산독립만세운동 미수사건의 주역이다. 당시 김인석의 나이는 열 세살에 불과했다.

소년투사 김인석은 울산공립보통학교에 다니면서 3월1일 서울을 시작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는 걸 알게됐다. 이에 자신의 집이 있는 온산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온산만세운동이 성공했다면 언양, 병영, 남창에 이어 울산에서 4번째 일어난 만세운동이 될 수도 있었다.

소년투사 김인석의 이야기는 2권의 책에서 전해진다. 첫번째는 울산보훈지청이 1998년 발간한 <우리고장 3·1독립운동-울산, 양산>이다. ‘온산면 독립만세 미수사건’ 제하의 내용에 따르면 김인석은 13세 어린 학생이었지만 언양, 병영, 남창의거를 접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맏형 김인수에게 태극기 그리는 법을 배워 비밀리에 많은 태극기를 만들었고, 동네 아동들과 집집마다 배포하면서 4월15일에 거사하자고 종용했다. 하지만 면장 김모(방어진사람)가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거사는 좌절됐다. 붙잡힌 김인석은 갖은 고문 끝에 20여 일만에 석방됐다.

두번째 기록은 온산읍지발간추진위원회가 2002년 펴낸 <온산읍지>다. ‘김인석의 독립운동’ 제하의 내용에는 울산보훈지청 자료와 달리 거사예정일이 4월11일이라고 돼있다. 하지만 경찰 취조 과정과 석방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하게 기록했다. 김인석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판단한 경찰은 배후를 대라고 무자비하게 태형을 가했다. 이에 김인석은 “독립운동에 노소가 따로 있으며 조국광복을 위함에 장유가 있느냐”고 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이 각서를 쓰고 주변의 탄원으로 겨우 방면됐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이후의 삶은 비참했고 스무살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사망 당시 아내의 뱃 속에는 2개월 된 태아가 있었다. 책 속 내용은 1927년 태어난 유복자의 이름이 지수(地洙)라는 것과 그의 자녀들이 부산에서 생활한다는 것까지 알려줬다.

김인석의 이야기는 지난 3년간 경상일보에 기사와 칼럼 등으로 소개됐다. 지난 2016년 3월1일 1면에 게재됐고, 최근에는 총 3회의 기획물 ‘3·1운동 100주년 백년 전 울산에 무슨 일 있었나’에서도 언급됐다.

최근 경상일보를 찾아온 김계숙씨는 조부의 과거를 알게 된지 불과 얼마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먼 친척이 울산에 살고있지만 김인석의 친자인 아버지와 본인을 포함한 8명의 친손들이 모두 부산에 살았기에 제대로 알아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할머니는 생전 남편 김인석에 대해 “나쁜 놈들한테 맞아 죽었다”고만 했고 정확한 일은 알려주지 않았다. 젊은 시절 교사생활을 했던 아버지조차도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자식들에게 일절 한마디 남기지 않고 2011년 사망했다.

김계숙 씨는 “그렇게 훌륭한 할배를 왜 자식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는지, 처음에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다”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 숨기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묻히게 된 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달 말부터 울산보훈청, 온산읍사무소, 경찰청, 울산초등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김인석의 기록을 찾아헤맸다. 예상은 했으나 100년 전 기록을 찾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당시 경찰 조서는 기대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학적부는 화재때문에 소실되고 없었다. 보훈청 발간도서는 울주박물관 소장도서 목록에서 겨우 찾아냈다. 신형석 대곡박물관장을 통해 그나마 지역에서는 김인석 재조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이후 힘을 얻어 부지런히 사료를 더 찾을 수 있었다.

김 씨는 “2권의 책을 쓴 필자들에게도 찾아가 보고 싶다. 아무쪼록 ‘소년 투사’ ‘열세살 독립운동가’ 우리 할배 김인석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분들의 제보가 나온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