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이동거리와 시간 고려
치료법 달라질 수밖에 없어
가까운 병원서 치료 받길 권해

▲ 민영주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얼마 전 학술 모임에 참석하여 서울소재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최근 새로운 환자가 너무 많아 진료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지방에서 오는 암 환자들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치료에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항암치료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계획된 일정에 따라 치료해야 함은 매우 상식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필자의 외래 환자 중 서울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1주일 간격으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모두 서울까지 가서 받긴 힘들어 간헐적으로 중간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내원하는 환자들이 있다. 또한, 항암치료 효과 판정을 위한 필수검사인 CT 검사가 해당 병원에서 제 때 하기 어려워 울산에서 검사 후 영상자료를 갖고 가는 환자도 있다.

한편,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암 진단 후 치료 계획을 상의할 때, 60세 이하의 젊은 환자들의 경우 서울로 병원을 옮기려는 경향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본인의 뜻인 경우도 있지만 주변 친인척들이 “어떻게 암 치료를 울산에서 받느냐? 서울 대형병원에 가야지!” 라고 독려하여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의사는 환자, 보호자들이 타 지역 병원에서 치료받길 원하면 당연히 필요한 모든 정보와 자료를 잘 챙겨 보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보낼 자료를 정리하고 소견서를 쓰면서 지역 병원 의사로서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울산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서 제대로 대우받으며 치료받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서울 최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데 당연히 더 좋거나 최소한 비슷하겠지, 어떻게 더 불리할 수 있을까?” 라고 의아해 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면, 폐암으로 서울 시민이 서울 대형병원 암 전문의에게 진료 받을 때와 울산 시민이 폐암으로 서울로 가 동일한 의사에게 진료 받을 때 치료법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왜 치료가 다를 수 있을까? 지방 환자라고 무시하고 차별한단 말인가? 서울 환자라고 더 잘 챙겨주고 대우한다는 말인가? 당연히, 그건 아니다. 그런 몰지각한 의사는 없다.

그 이유는 집과 병원과의 거리 때문이다. 항암치료 하는데 500㎞ 떨어진 환자와 20㎞ 떨어진 환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치료법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병원과 가까운 곳에 사는 환자는 병원을 자주 방문할 수 있지만 원거리 환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 개발되는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할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 왜냐하면 임상시험은 참여 동의 절차 이후, 치료 준비 기간이 2주 이상 필요한데다 일상적인 진료보다 더 자주, 더 오래 병원에 체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도 울산 밖 먼 지역에서 오는 암 환자에게는 가능한 자주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 치료법을 추천하며, 신약 임상시험 참여는 권하질 못하는 실정이다.

울산 시민은 울산에서, 서울 시민은 서울에서 치료 받을 때 최적의 치료법을 제공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암 치료는 가능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수록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암 치료 후 평생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언제까지 원거리 병원을 다닐 수 있을 지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그만큼, 지역 내에 믿고 치료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병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절실한 필수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울산 시민들이 지역 내 의료 자원을 잘 이용해 주셔야 한다. 막연한 서울 대형 병원 선호는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 울산 지역 내 의료진의 치료 계획이 적절하다면 믿고 따라 주시길 당부 드린다. 이에 걸맞게 지역 의료계에서는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인술을 펼치며 충분한 물적, 인적 투자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또한, 지자체에서도 울산 의료 인프라가 균형적으로 갖춰지도록 적극적인 계획과 실행, 협조가 요망된다. 민영주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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