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이제는 기후재앙이 전쟁에 버금가는 현실로 다가왔다. 온 국민이 미세먼지로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에 과연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상황이 되지 않도록 전 세계적인 대비가 절실하다.

최근 지구촌 곳곳이 한파와 폭염으로 피해가 극심하다. 슈퍼 엘니뇨 이후 발생한 라니냐에 의한 예고된 기상이변의 결과다. 지난 겨울 미국과 영국 등 유럽 일부 지역은 알래스카를 능가하는 살인적인 한파로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지구 남반구에 있는 호주는 정반대로 펄펄 끓어올랐다. 찜통더위로 수많은 물고기와 야생마, 박쥐 등이 떼죽음을 당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일 년 내내 얼어붙어 있던 캐나다 북쪽의 영구 동토층이 이젠 여름철이 되면 녹아내려 질퍽해진다. 몇 년 전 이곳에서 한 연구팀이 700년이나 지난 순록 배설물을 발견했다. 녹아내린 배설물 속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바이러스가 있었다.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과거의 바이러스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 옛 바이러스는 죽지 않았다. 또한 현대 식물을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기후변화로 북극이나 남극 빙하 아래에 잠든 옛 미생물이 다시 깨어난다면, 그리고 그 미생물이 우리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종류라면 인류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바야흐로 기후변화가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인류가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 탓이다.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류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면 사람의 기억력이나 집중력,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진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지하철이나 교실에서 졸리는 것과 같은 이유다. 온실가스 상승은 홍수와 가뭄, 폭염, 한파 등 기상이변이 훨씬 자주 그리고 훨씬 강하게 발생하게 한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기후변화는 다양한 형태로 인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홍수가 발생하면 건물이 침수된다. 침수됐던 건물에는 곰팡이가 자라고, 곰팡이 포자는 실내 공기를 오염시킨다. 폭우가 쏟아지면 곳곳에 흩어져있던 오염물질이 빗물에 씻겨 상수원으로 들어간다. 온갖 오염물질과 병원균이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깨끗한 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인성 전염병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여름 폭염에 시달렸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그때가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수도 있다. 끔찍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폭염이 더 심해지고 폭염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이란 경고다. 기후변화로 확산하는 지구촌의 감염 질환과 열대 감염병 앞에 한반도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질병이 가져올 경제적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기후변화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과 예산 투입이 정치·경제·사회 등 다른 분야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기후변화를 예방하려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육류 섭취를 줄이거나 걷기를 장려하는 등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공중보건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만성질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는 인간계와 자연계에 모두 중대한 위협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도 우리 화학산업인의 몫이다. 지금이야말로 친환경 녹색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논의를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많이 아쉽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라면 먼 나라의 일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는 동안 기후변화로 인한 폐해는 점점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충분히 벌어지길 기대한다.

울산의 모든 화학산업인들과 함께 ‘제13회 울산 화학의 날’을 축하하며 그동안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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