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보존과 관련해 지금까지 울산시의 정책기조와는 다른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울산시정 자문기구인 미래비전위원회는 지난 22일 열린 첫 회의에서 ‘선 암각화 보존, 후 물문제 해결’이라는 정책제안을 의결했다. 울산시가 이 의견을 어떻게 수용할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울산시와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추정은 어렵지 않다. 강제성이 없는 자문기구이기는 하지만 시정을 역행하는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간 울산시는 ‘암각화 보존과 물문제 동시 해결’을 추진해왔다.

반구대 암각화의 영원한 보존은 울산시민 모두의 바람이다.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기만 하면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바위의 풍화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데, 이 얼마나 단순한 문제인가. 하지만 울산시민들로서는 ‘맑은 물’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해법은 대체수원 발굴이다. 울산의 유일한 식수원인 사연댐 수위를 낮춤으로써 식수공급에 차질이 생기므로 다른 식수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다. 식수는 국민의 생명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국가의 보물이고 인류의 재산이다. 그 책임은 모두 정부에 있다. 공연히 울산사람들이 문화재의 중요성도 모르는 야만인인 것처럼 몰아붙이면서 허송세월한 것은 분명 문화재청과 국토부를 비롯한 정부다. 역대 정부의 무능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알다시피 포르투갈은 코아암각화 보존을 위해 대규모 수력발전을 위한 댐건설을 중단했다. 그렇다고 전력생산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주변에 작은 댐을 건설해 전력문제를 해결했다. 암각화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에 따른 주민들의 경제적 손실은 엄청난 규모의 포도밭을 개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상했다. 이 과정에는 포르투갈 정부는 물론이고 EU까지 나섰다. 우리 정부처럼 울산시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뒷짐을 지고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미래비전위원회는 울산시가 먼저 사연댐에 배수용 여수로를 설치해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선포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사연댐의 철거를 제안했다. 대신 문화재청으로부터 대곡천의 재자연화 등 반구대암각화 일대 관광자원화를 얻어내서 세계적 문화·관광도시로 도약해야 한다고 밝혔다. 울산권 맑은 물 확보와 관련해서는 영천댐 취수 및 낙동강 여과수 확보를 약속받아야 한다고 했다.

울산시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암각화는 머잖아 ‘물고문’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10여년동안 그만큼 치열하게 논란을 벌이고도 해결책을 못찾는 우리 정부가 과연 맑은 물 확보의 완전한 대안을 울산시민들의 손에 쥐어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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