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음~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벚꽃엔딩’ 중(버스커 버스커)

제3회 작천정 벚꽃축제가 오는 29일(금)부터 31일까지 열린다. 벚꽃터널은 1㎞ 남짓한 거리에 아름드리 벚꽃나무 234그루가 양쪽으로 도열해 장관을 연출한다. 가슴 높이의 지름 158㎝ 크기로 두사람이 서로 손 맞잡으면 닿을 듯 말 듯 한 크기다. 벚꽃터널(사진)이 만개하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의 팝콘같은 꽃잎들이 앞다투어 핀다. 멀리서 보면 벚꽃터널 위로 긴 구름 띠가 피어나는 것 같다. 그 속에 설치된 총천연색 조명이 빛나면 오색구름이 부풀어 올라 터널을 지나가는 용의 형국을 띠기도 한다. 꽃잎이 떨어질 때도 환상이다. 때아닌 눈보라가 폭설처럼 내리면 겨울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벚꽃은 만개까지 5일, 지는데 5일 걸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나 할까. 작천정 벚꽃터널은 1937년 봄에 심은 3~5년생 묘목이다. 굳이 몇살인지 따지자면 85~87살 쯤 된다.

 

“1927년 잃어버렸던 작천정을 되찾은 곽해진은 삼남면의 몇몇 인사들과 작천정 진입도로 신설을 위하여 또 활동을 개시하였다. 원래 작천정 도로는 지금의 언양여상과 수남부락 뒤를 관통하는 농로 뿐이었으며 현재의 진입도로에는 소로(小路)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로 신설에는 토지 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니 지주들이 쉽사리 희사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초기에는 김원룡, 윤동명이 보좌하여 일부 승락을 받았으나 대지주가 불응하여 후에 김복조, 정병호, 김제호의 노고가 많았다. 이 설득작업이 무려 10년만에 결실을 맺었는데, 1936년에 지주의 승락이 나고 1937년 3월에 곽해진이 삼남면장에 부임하게 되자 상북면장 김석한, 언양면장 박영한과 합의가 되어 상북, 삼남 각 200명, 언양면 300명의 노력동원의 책임을 지고 노역함으로써 지금의 작천정 진입도로가 생겨난 것이다. 이 때 마침 양산 신평에 벚꽃 묘목으로 가로수를 심고 남은 것이 있어 이것을 매입하려니 또 자금이 없어 백방으로 모색 중에 있었는데 다행히 울산군 교육위원 선거가 있어 여기에 언양면 입후보를 하봉철이 하였던 것이다. 언양면협의회 의원 전원이 하봉철의 당선을 보장하고 선거운동비조로 묘목대금을 하씨에게 책임지우고 1937년 봄에 이 가로수를 식재하였던 것이다.”

1960대 말에 작성한 고(故) 윤동명씨(작천정보존회)의 기록이다. 작천정보존회 총무 남복수(65)씨는 작천정 벚꽃터널이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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