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따로 똑같이’에 행정·예산 낭비

▲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에 짓고 있는 울주종합체육공원 공사 현장. 오래 전부터 군 내 운동장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일면서 울주종합체육공원 내 주경기장이 논란 끝에 실내 체육시설로 변경됐다. 중부권에 울주군국민체육센터, 남부권에 온산문화체육센터가 있는 만큼 서부권에도 대규모 실내 체육시설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작용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12개 읍면별로 운동장 1곳꼴 과도
신설 울주종합체육공원 주경기장
논란끝에 결국 실내 체육시설 변경

읍면마다 형평성 내세워 요구 탓에
郡, 특정지역 필요시설 도입도 고민
군청 신청사·공공병원등 주요 시설
과도한 유치경쟁으로 갈등 골 깊어

유지·관리비 결국 郡재정에 부담
권역별·읍면별 정서적 통합 추진
예산과 행정 효율성 제고 모색해야

울산 울주군은 서울보다 넓은 757.39㎢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을 보유한 지자체다. 해안과 산악, 공단과 주거 밀집지 등이 골고루 펼쳐져 있어 지역별로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다. 12개 읍면은 편의상 남부권과 중부권, 서부권으로 분류돼 주요 현안이 발생할 경우 권역별, 읍면별 이익을 위해 상호 대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타 지역에 우선되는 시설의 경우 지역 실정을 뒤로한 채 ‘따로 똑같이식’ 요구가 많아 행정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균형발전에 앞서 과다 투자와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울주군의 지역주의 현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울주군은 전국 군 단위 지자체 가운데 최다인 9000억원대의 막대한 예산 규모에, 900명을 웃도는 풍부한 인력을 자랑하는 지자체다. 언뜻 예산 운용 및 사업 추진이 원활할 것으로 보이지만, 낙후된 도시기반시설 조성 등에 수반되는 비용이 많아 생각처럼 여유가 있지는 않다. 특히 면적이 워낙 넓어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적게는 권역별, 많게는 읍면별로 각종 시설 조성에 대한 요구가 뒤따라 효율적인 예산·행정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설물 과다 조성으로 실효성 저하

울주군 관내에 위치한 운동장은 범서생활체육공원과 상북면민운동장, 대암체육공원, 서생체육공원 등 모두 11곳이다. 사실상 12개 읍면별로 운동장이 1개씩 들어선 셈이다. 전액 군비가 투입된 운동장은 온산운동장과 웅촌운동장 2곳뿐이지만 나머지 운동장 중 군비가 일부 투입된 곳도 있어 예산 낭비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군은 주민들이 운동장 건립을 요구했고, 시와 한수원 등이 예산을 지원해 준 인센티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만큼 예산 낭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운동장 대신 필수 시설물을 지었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감사원은 지난 2013년 국가보조사업 집행실태 등에 대한 특정 감사에서 군이 읍·면에 경쟁적으로 체육시설을 조성해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체육시설 운영적자 등과 관련해 주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군 내 운동장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일면서 삼남면에 추진 중이던 울주종합체육공원 내 주경기장이 논란 끝에 실내 체육시설로 변경되기도 했다. 중부권에 울주군국민체육센터, 남부권에 온산문화체육센터가 있는 만큼 서부권에도 대규모 실내 체육시설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사업비가 200억원가량 증액이 불가피해졌고 운동장은 아니지만 체육시설 과다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 울주군국민체육센터와 육아종합지원센터 전경. 김동수기자

◇실정 무시한 따로 똑같이 요구…행정 시설 도입 꺼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정 지역에 필요한 시설이라도 도입을 고민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처음 시설을 조성한 뒤 형평성 차원에서 타 읍면 주민들이 추가 개설을 요구하는 경우, 행정이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결국 비용 대비 편익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이기지 못해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가 생길 수밖에 없다. 도심 물놀이장 조성 사업이 대표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울주군민들은 5개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도심 내 어린이 물놀이장이 없어 불편을 겪고 있다며 도심 물놀이장 설치를 촉구했다. 이에 군은 타 지자체와 달리 바다와 하천, 계곡 등 자연적으로 형성된 물놀이 공간이 권역별로 산재해 이를 대체시설로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한곳을 조성하면 타 지역에도 민원으로 추가 조성이 불가피해 예산 낭비 소지가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결국 군은 여론에 밀려 지난해 15억원을 투입, 범서읍 천상리에 가온 물놀이장을 개설했다. 이후 타 읍면에서도 개설 요구가 잇따랐고, 올해 상북면 못안공원 일원에 물놀이장 추가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나마 요구가 들어온 나머지 3곳은 불가 방침을 세웠지만 과거 선례를 감안할 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치 경쟁으로 지역 대립 격화도

주요 시설물을 유치할 경우 벌어지는 대립은 가뜩이나 골이 깊은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한다.

지난 2007년 울주군 신청사 이전을 추진하면서 후보지를 접수한 결과 언양읍과 범서읍, 청량면, 삼남면 등 총 6곳이 신청했다.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각 읍면의 갈등이 심화됐고, 입지 선정이 수차례 연기되기도 했다.

도심과 인접한 중부권과 KTX역세권이 위치한 서부권이 각종 유치전에 활발히 뛰어드는 반면 지리적으로 다소 떨어져 있는 남부권은 입지의 불리함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남부권은 최근 군이 사활을 걸고 뛰어든 공공병원 유치 입지 대상에서도 사실상 배제돼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선출직 단체장인 탓에 지역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근본적 한계도 있다. 시설 확충도 확충이지만 향후 유지·관리가 군 재정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근본적 해법 마련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울주군 관계자는 “울주군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독립적 색채가 짙은 각 읍면이 융화되지 못하고 서로를 견제해 예산·행정 낭비가 벌어지고 있다”며 “언제까지 예산이 넉넉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 만큼 지금부터 각 권역과 읍면의 정서적 통합을 추진해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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