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세시기 청명조(條)에 따르면 대궐에서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고,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그리고 360개 고을의 수령에게 나눠줬다. 이를 ‘사화(賜火)’, 즉 임금이 주는 불이라고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 이 불을 다시 백성들에게 나눠줬는데, 묵은불을 끄고 새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그대로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명 다음날인 한식은 찬밥을 먹는 날이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고 할만큼 땅의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다. 특히 청명절 개화하는 살구꽃은 홍조띤 소녀의 볼 같이 수줍기만 하다.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淸明時節雨紛紛)/ 길 가는 나그네 애간장 끊어진다(路上行人欲斷魂)/ 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借問酒家何處有)/ 목동이 손 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牧童遙指杏花村)… ‘청명’(두보)
‘청명(淸明)’에서 ‘살구꽃 피는 마을’은 곧 술 익는 주막, 즉 행화촌(杏花村)을 이른다. 옛 선비들은 살구꽃 필 무렵에 내리는 비를 ‘행화우(杏花雨)’라 해서 특별히 좋아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살구꽃 핀 마을’(이호우)
살구꽃은 복사꽃처럼 진하지 않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이라. 살구꽃이면 어떻고 복사꽃이면 어떨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인 것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희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어서 너는 오너라’(박두진)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