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오는 5일은 식목일이자 청명이다. 날씨가 좋다는 뜻의 청명(淸明)은 집수리, 묘자리 고치기 등 겨우내 미뤄두었던 일들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날이다. 날이 너무 좋다보니 불이 자주 나기도 한다. 울산시는 오는 7일까지를 청명·한식 산불방지대책 기간으로 정했다.

동국세시기 청명조(條)에 따르면 대궐에서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고,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그리고 360개 고을의 수령에게 나눠줬다. 이를 ‘사화(賜火)’, 즉 임금이 주는 불이라고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 이 불을 다시 백성들에게 나눠줬는데, 묵은불을 끄고 새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그대로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명 다음날인 한식은 찬밥을 먹는 날이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고 할만큼 땅의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다. 특히 청명절 개화하는 살구꽃은 홍조띤 소녀의 볼 같이 수줍기만 하다.

청명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淸明時節雨紛紛)/ 길 가는 나그네 애간장 끊어진다(路上行人欲斷魂)/ 목동을 붙잡고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借問酒家何處有)/ 목동이 손 들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牧童遙指杏花村)… ‘청명’(두보)

‘청명(淸明)’에서 ‘살구꽃 피는 마을’은 곧 술 익는 주막, 즉 행화촌(杏花村)을 이른다. 옛 선비들은 살구꽃 필 무렵에 내리는 비를 ‘행화우(杏花雨)’라 해서 특별히 좋아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살구꽃 핀 마을’(이호우)

살구꽃은 복사꽃처럼 진하지 않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이라. 살구꽃이면 어떻고 복사꽃이면 어떨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인 것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희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어서 너는 오너라’(박두진)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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