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버린 쓰레기에 신음하는 자연
일회용품 줄이기 생활화만이 치료책
이번 봄산행 인간의 흔적 남기지 말길

▲ 박일준 한국동서발전사장

바야흐로 봄이다. 긴 겨울 동안 땅 속에 몸을 숨기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를 맞이하러 산에 오른다. 옷차림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이 설레고 발걸음도 가볍다. 마치 절대 녹지 않을 것처럼 꽁꽁 언 땅을 뚫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 새싹과 꽃봉오리를 보며 걷다보면 어느새 산 중턱에 다다른다. 따스한 햇살에 자연이 펴낸 식물도감이 봄의 산을 물들인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 했던가. 그런데 굽어진 산길을 따라 이름은 남아있지 않고 마구잡이로 버려진 쓰레기를 마주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이다. 산에서 취사가 금지되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플라스틱 물병부터 초콜릿 포장재까지, 등산객들이 지난 자리에는 어김없이 쓰레기가 눈에 띈다. 지자체마다 둘레길을 만들어 치유의 길이라며 자랑하지만 남몰래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에게는 속수무책이다.

일회용 컵과 빨대, 비닐봉지 등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사용이 우리의 일상이 되다보니 등산객들이 산에 들고 오는 물품 중에 플라스틱이 아닌 제품이 없다. 집으로 다시 들고 가는 사람도 많겠지만 여기저기 버리고 가는 플라스틱·비닐 용품도 상당수이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은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시간이 무려 500년이나 걸린다. 사실상 분해되지 않고 인간의 손으로 회수해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플라스틱과 비닐이 온 지구 곳곳에 쌓여가고 있다. 환경오염의 가장 큰 주범이라 할 수 있다.

비닐봉투를 뒤집어쓴 황새, 콧구멍에 비닐빨대가 꽂혀 고통 받는 바다거북이, 뱃속을 비닐봉지로 꽉 채운 돌고래. 일회용품의 과다한 사용이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도 자주 접한다. 인간의 편의가 부메랑이 되어 환경의 역습으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개개인이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면서 비닐과 일회용품을 덜 쓰는 것 외에 달리 대책이 없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동서발전은 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 이행을 위해 △전 직원 재활용 컵 사용 생활화 △회의 진행 시 페트병 및 일회용품 사용 금지 △야외 행사 시 개인 물통 지참 △우산빗물제거기 설치 △구내카페(매점) 이용 시 일회용 비닐봉투 및 플라스틱 컵 사용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환경표지인증 인쇄용지 사용과 화장실 핸드드라이어 추가 설치도 검토 중이다.

요즘 등산인들 사이에는 산의 쓰레기를 줍는 것은 기본이고 자연에 흔적을 남기지 말고 산행하자는 LNT(Leave No Trace) 친환경 등산지침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스웨덴 운동 트렌드인 ‘플로깅’이 세계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플로깅은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친환경적인 조깅으로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단어 jogging의 합성어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에 보통의 조깅보다 더 많은 열량이 소비되어 운동 효과가 더욱 높다고 하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후대가 깨끗하게 물려받아 영원히 누리고 살아야할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이번 봄 산행에는 꽃구경도, 사진촬영도 좋지만 쓰레기를 주우며 자연에서 인간의 흔적을 지워보는 건 어떠할지. 적어도 주위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을 보면 따뜻한 고마움의 인사라도 건네 보자. 박일준 한국동서발전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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