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은 합리적인 인간관계의 미덕
언제나 도덕성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사실관계의 진위를 가리는 중요요소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되거나 수사기관에서 혐의없다고 결정되는 사건들에 대한 보도를 가끔 보게 된다. 정치적 계산하에 특정 계파인지 분명하지 않음에도 그렇다고 주장하면서 끝자락에 앉아 이익을 얻은 후에 계파 수장이 몰락하자 그 계파가 아니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정치인도 있다.

일관성은 하나의 방법이나 태도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하는 성질을 말한다. 성격, 행동과 삶의 태도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주의 또는 방법을 계속하는 경우 일관성이 있고 지조 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심리학에 의하면 사람들은 보통 지금까지 행동하여 온 것과 같이 일관되게 행동하거나 혹은 일관되게 보이도록 행동하려는 마음속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타인이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므로 본능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관성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비하여 불편하지 않다. 신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 사람은 일관성의 내용이 극단적이거나 사회적인 해악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일관성이 결여된 사람은 가식적이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바꾸기도 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혐오스런 방법까지 동원하며, 타인을 조종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소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신념에 차서 부르짖던 말과 행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는 경우 일관성 없다는 것을 넘어 표리부동하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이런 모습은 너무 민망스럽다.

신념과 태도에 일관성이 있는 경우 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일관성이 반드시 도덕성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성향을 가진 사람도 일관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 법치국가에서는 유사한 것을 유사하게 다루어야 하고, 시민들도 국가에 대하여 원칙에 입각하여 일관성있게 다루어 주기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관성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한국에도 다녀간 적이 있는 미국 법철학자 드워킨(R. Dowrkin)은 일관성을 정의, 공정성과 아울러 민주법치국가에서의 법 해석의 지도원리로 보았다.

일관성이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수사나 재판 영역이다. 진술의 일관성은 혐의사실을 판단하는 유력한 증거인 진술의 신빙성 판단과 직결되어 있다.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신빙성이 부정되고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되는 것이다. 진술의 일관성은 피고인과 피해자 두 사람간에 이루어지는 은밀한 범행인 성범죄 사건이나 뇌물사건 등에서 다른 물증이 없어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가 될 경우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데 있어 결정적이다.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나 피고인도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면 불리하게 될 수 있다.

진술이 일관된다고 하여 반드시 진술에 기초한 사실관계가 진실인 것은 아니다. 엉터리 신념을 가진 사람이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교묘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선택적이며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으므로 부분적으로 일관되지 않다고 하여 바로 거짓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진술의 신빙성은 일관성 외에 제반 정황을 감안하여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

일관성은 사실관계의 진위를 가리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신념과 행동의 일관성은 기회주의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으므로 합리적인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미덕이다. 일관성이 언제나 도덕성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위선과 배치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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