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뚝심있는 행정이 예산낭비 막아

▲ 울주군은 구영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범서읍 천상리 범서생활체육공원(사진) 외에 구영운동장 조성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설 중복 투자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 이기주의에 따른 예산·행정 낭비 반복을 막기 위해 해당 시설물의 필요성을 엄격히 따져본 뒤 타당성이 낮다면 대체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우기자

울산 울주군은 방대한 면적에 따른 권역별 및 읍면별 지역 이기주의 심화로 무분별한 투자로 인한 예산·행정 낭비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개선 방향은 명확하지만 이를 바로잡을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난제다. 전문가들조차 몇 가지 해법을 제시하면서도 이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을 정도다. 하지만 지역·권역별 중복으로 낭비되는 투자 예산은 물론, 향후 투입될 막대한 유지·관리 비용을 감안한다면 마냥 대안 마련을 늦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읍면별 시설물 너도나도 요구에
중복시설·예산낭비 악순환 반복
행정 입맛 맞춘 타당성 조사 문제

주민들과 충분한 정보공유 중요
충실한 기초조사 통한 데이터로
반발여론 설득하려는 노력 필요

표 의식 선출직 단체장·정치인
무리한 사업추진 욕심 버리고
지역 전체 발전 생각할 줄 아는
주민들의 인식 개선도 뒤따라야

◇필요한 시설이냐가 판단기준 돼야

전문가들은 당연히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경쟁적으로 지어지는 시설 중복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서 해당 시설물이 과연 지역에 꼭 필요한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A지역에 특정 시설물을 건립할 경우 B지역에서도 동일 시설물을 요구, 여론에 밀려 떠밀리 듯 시설물을 짓는 것이 그동안 군의 행정 패턴이었다. 각 읍·면마다 산재한 11개에 달하는 축구장이 대표적인 예다.

중복 시설물 건립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 조사부터 충실히 한 뒤 수요 부족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주민 요구를 거부할 행정의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업을 추진키로 사실상 내정하고 용역 과정에서 뒤늦게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용역기관은 발주처인 행정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타당성 조사는 사실상 또다른 예산낭비에 다름 아니라는 설명이다.

최근 논란이 된 울주군종합체육공원의 실내 체육센터 변경 과정에서 군이 정확한 수요와 유지·관리 비용을 파악해 주민들을 설득했다면 반발이 훨씬 줄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울주군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방대한 면적 탓에 권역별 및 읍면별 지역 이기주의 심화로 무분별한 투자에 따른 예산·행정 낭비가 반복되고 있다. 사진은 울주군청 전경.

◇대안 제시해 주민 설득해야

특정 사업이 해당 지역에 꼭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뚝심있게 주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행정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현실을 공유, 예산 낭비 요인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로 주민을 설득하되, 반드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예산으로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다’ ‘지역에 꼭 필요한 우선순위가 높은 시설을 먼저 지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투자·운영 비용이 큰 대형 사업일수록 필수적이다. 행정으로선 번거로울 수밖에 없지만 예산 낭비를 막고 지역 이기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이와 관련, 사실상 행복 케이블카의 대체 시설로 여겨지는 호랑이생태원 사업 추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호랑이생태원의 예산 대비 효율에 대한 상세한 자료 없이 머릿속 구상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부지 선정에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철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정된 예산을 배분·집행할 때 우선순위가 낮은 정책은 추진할 필요가 없는데 여론에 밀려 강행하다 보니 문제가 벌어진다”며 “해당 지역에 가장 필요한 시설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출직·주민 인식의 전환도 필요

지역 이기주의 근절이 어려운 이유는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선출직 단체장·정치인과, 이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의 입김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주민들은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경쟁적으로 사업을 요구하며, 표를 의식하는 단체장·정치인들은 쉬운 길로 가려다 보니 무리한 사업이라도 추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 이기주의를 이용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지역 이기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정치적 의식과 역량 강화도 절실하다. 최근 범서읍 주민과의 대화에서 특정 지역에 복지시설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일부 주민이 지역 전체의 발전 관점에서 입지를 논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시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문가들은 서로의 이익이나 비용을 골고루 균점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시간이 지나 재건축이 필요해지는 혐오 시설물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현 위치가 아닌 타 지역으로 이전, 갈등 요인을 희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시설 유치에 대한 인센티브는 좋지 않은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지역 이기주의 성향을 역이용해 이익 첨예화 집단에 미끼로 던져주는 것으로, 이럴 경우 갈수록 인센티브가 커질 수밖에 없어 행정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만큼 가급적 피해야 한다.

지역 이기주의 해소가 균형 발전의 열쇠이기는 하지만 무조건적인 균형도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이병철 교수는 “균형도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에서 논해야 하는 만큼 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특정지역을 타 지역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획기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며 “어디에나 들어서는 기본 시설이 아닌 발전 가능성이 높은 신성장 동력을 제시해 타 지역과 균형을 이룬 다음 지역 이기주의 극복을 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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