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3)

▲ 아름다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랄릿푸르. 느닷없이 나타나는 왕궁 광장은 전통건축의 세련된 개성과 조형미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근대건축의 궁벽함을 도드라지게 노출시킨다.

아름다운 도시라는 뜻의 랄릿푸르
네팔을 넘어선 인류문명 전체의
건축·예술 걸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왕궁광장 주변의 난개발들은
마치 쓰레기통에 보석 담아놓은듯
전통도시의 맥락 흐트려놓은 건
자본주의 이기심을 통제못한 탓
문화재 위한 통제의 필요성 방증

네팔이 문화적 정체성을 갖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말 말라(mala)시대 후기로 알려진다. 말라 왕들은 힌두교를 바탕으로 견고한 사회체제를 구축하고 카트만두 분지에 많은 도시와 사원을 건설했다. 박타푸르, 카트만두, 파탄 등 세 도시는 그 문명의 구심점이었다. 17세기에 이르면 세 도시는 세 나라로 분열되어 각각의 수도가 된다. 겨우 서울 면적도 안 되는 지역이 세 나라로 갈라져 경쟁하게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분열은 웅장한 도시와 왕궁, 사원을 경쟁적으로 건설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 도시 중 하나인 랄릿푸르(Ralitpur)는 ‘아름다운 도시’라는 의미를 갖는다. 영어로는 파탄(patan)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주민들은 싫어하는 이름이라 한다. 도시의 확산에 따라 카트만두와 강 하나 사이로 붙어버렸지만 엄연히 다른 국가의 수도였다. 오늘날까지도 서로 다른 의회를 구성하며 독자적인 성격과 정체성을 갖는 두 개의 역사 중심으로 남아있다. 도성으로서 랄릿푸르의 최전성기는 16~17세기에 형성된다. 왕궁 광장을 제외한 당시 도성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왕궁광장의 전통적인 모습은 세 도시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랄릿푸르의 왕궁 광장은 느닷없이 나타난다. 성문이나 성벽과 같은 경계가 없이 현대도시 속에서 갑자기 구시대의 중심가로 순간 이동하는 격이다. 그것은 단지 시대적 격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건축의 몰개성적이고 궁벽한 디자인은 전통건축의 세련된 개성과 조형미를 극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자인이 발전한다는 가설은 이곳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북쪽에서 접근하면 광장은 멀리 히말라야의 설봉들을 향한 파노라마 조망을 보여준다. 직선으로 길게 벽을 이루는 왕궁과 그 앞에 배치된 각기 독특한 양식의 사원들은 신성한 히말라야의 후광으로 빛을 발한다. 양식적 독창성만이 아니다. 그들을 불규칙하게 배열함으로써 중첩에 의한 파노라마를 연출해 낸다. 가히 광장만으로도 ‘아름다운 도시’로 불릴 만하다. ‘파탄 달발 광장의 앙상블은 동양인들의 자긍심과 신앙으로 작은 공간에 세운 가장 그림 같은 건물의 걸작품들’이라고 유럽인들은 묘사했다.

왕궁광장의 사원들은 네팔건축의 모든 양식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적 변화와 타 문화의 영향, 그리고 토착화 과정 등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과정을 반영한다. 사원들은 대부분 힌두사원이며, 건축양식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목구조의 중층 기와지붕을 갖는 네와르 식 탑형사원(Newar Pagoda), 산봉우리 형태의 석탑조형인 식카라(Sikkhara), 그리고 네와르 식과 식카라의 혼합인 라트나 데발(ratna deval), 마지막으로 돔 지붕을 갖는 무굴양식이다.

네와르 파고다는 중층 지붕의 목구조로 조형된다는 점에서 토착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지붕의 체감률은 우리네 석탑과 유사하다. 하지만 가새와 같은 버팀대를 이용해 길게 돌출한 처마를 떠받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특히 목조 부재를 부조로 장식하는 기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목재를 떡 주무르듯이 빚어 만든 목각 공예의 현란함, 기둥과 릴리프, 화려한 창호장식 등은 건축부재가 아니라 정교한 목각예술품으로 감상해야 한다.

시카라(sikhara)는 6세기 인도에서 발전한 양식이다. 네팔에서도 비슷한 시기인 리차비 왕조 후기에 출현하는데 인도에서 힌두교와 함께 석조조형을 전수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산봉우리 모양의 석조, 혹은 벽돌조로 만들어진 이 탑은 그 안에 작은 정방형 성소를 두어 신상을 봉안한다. 힌두교의 세계관에서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메루산을 상징한다. 스투파처럼 탑의 정상부에는 둥글납작한 원반을 설치하고 그 위에 상륜부를 얹는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시카라는 네팔에서 더욱 복잡한 양식으로 발전한다. 중앙의 시카라를 둘러싸는 작은 탑들을 복합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곳 광장에는 가장 세련된 사례를 볼 수 있는데 바로 크리슈나 사원이다. 시카라 주변의 작은 탑들이 네와르 파고다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착양식과의 혼합이라고 할 수 있다. 라트나 데발(ratna deval), 혹은 ‘보석 사원’이라고 부르는 이 양식은 네팔에서 18세기에 유행하게 된 시카라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랄릿푸르는 네팔의 문화유산을 넘어 인류문명의 위대한 건축적, 예술적 걸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박타푸르처럼 도시적 장소로서의 맥락을 온전히 보존하지는 못했다. 광장 주변은 전통과 배치되는 싸구려 근대건축들로 개발(?)되어 더 이상 전통도시 맥락을 유지하지 못했다. 쓰레기통 안에 보석을 담아 놓은 것으로 비유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랄릿푸르는 왕궁광장이라는 작은 영역 속에 골동품 거리처럼 남겨졌다.

맥락을 해체한 것은 빈곤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이기심을 통제하지 못하는 공적 시스템이다. 토지이용의 자유를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권으로 주장하는 한 도시의 공적 가치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문화재 주변의 난개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나아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교육도 필수적이다. 조상이 남겨준 귀한 유산의 가치를 모르고 헐값에 팔아먹는 우매한 후손들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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