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필 울산향교 전교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으로 정부와 지자체들이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3·1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파리장서운동’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유림독립항쟁’으로 불리는 ‘파리장서운동’은 조선조 500여년 동안 국가 이념의 정신적 지주였던 유림들이 조선의 독립을 원하는 청원서를 1919년 파리에서 개최된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사건을 말한다.

이 때 울산의 이규린(李奎麟) 어른을 비롯해 전국에서 137명의 유림들이 서명하였으며, 이로 인해 유림 500여명이 심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많이 배출했던 울산은 오랫동안 ‘충무’의 고장으로 불리었고 조선 조 500여 년 동안 유림들이 많은 선비의 고장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심산 김창숙이 해방 후 유림을 대표하는 성균관 대학을 건립했을 때 울산 유림들이 앞장서 많은 기금을 희사했다는데서 알 수 있다.

해방 후에도 울산에는 소위 양반으로 불리는 성씨들이 많았다.

박윤웅을 모시는 울산 박씨, 이예를 시조로 모시는 학성 이씨, 임란 때 공신을 배출한 광주 안씨, 파평 윤씨, 김해 배씨, 제주 고씨, 아산 장씨, 밀양 박씨, 고령 김씨, 평해 황씨 등 이들 씨족들은 대대로 향촌을 이끌어왔고 임란 때는 의병을 많이 배출했다. 임란 후에는 향촌을 되살리는데 앞장섰던 이들 문중들은 관학을 대신해 사학을 세우고 울산 향교를 구교동에서 교동으로 옮길 때도 힘을 보태었다.

‘파리장서운동’이 벌인 자랑스러운 일이 또 군자금 모금이다. 3·1운동 후 상해 임시정부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서는 일제와 싸울 수 있는 독립군 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만주에 무관 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군자금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이때도 유림들이 앞장섰다.

군자금 모금을 위한 유림독립항쟁은 ‘파리장서운동’ 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운동에 참여한 울산인물이 이규린 한명 뿐이었다.

그러나 울산향교는 그동안 울산 유림들의 행적을 볼 때 이규린 외에도 군자금 모금에 협력한 울산 유림이 더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발굴에 앞장 서 손후익, 이재락, 이우락, 등 3명을 더 찾아내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모두 군자금을 낸 협의로 구속된 후 옥중생활을 했다.

그리고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유림들을 선양하기 위하여 파리장서 기념비가 서울과 대구를 포함 경남의 김해, 거창, 밀양, 산청, 합천 그리고 경북의 봉화, 전북의 정읍과 고창 등 여러 곳에 세워져있다.

그러나 울산에는 많은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과 군자금 모금에 앞장섰는데도 그들을 선양할 수 있는 기념비가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는데 앞으로 향교는 기념비 사업도 벌일 예정이다.

올해 ‘유림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을 맞아 유림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이들을 선양하기 위하여 오는 4월17일 울산을 비롯한 전국 234개 향교에서 각종 행사를 갖기로 했다.

울산향교도 이날 많은 유림과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각종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와 같이 우리 유림은 나라가 위급할 때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우국충정(憂國衷情) 하는 유림의 투철한 충의 정신이야 말로 길이 계승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선비의 도시’ 울산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이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 이동필 울산향교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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