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선조들이 꿈꿨던 봄날을 맞아
역사의 상처 딛고 지속적 성장하려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어야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핀다. 울산에서 가장 먼저 개화한다는 봄의 화신 진달래도 겨우내 움츠리다가 함께 왔다. 하루가 다르게 주변이 완연한 생명의 봄빛으로 바뀌고 있다. 이것이 자연이다. 아마 우리가 각자 세월의 무게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봄의 메시지는 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을 것이다. 봄은 부활(復活)과 소생(蘇生), 성장과 희망이다. 이혜인 시인도 <봄의 연가>에서 ‘겨울에도 봄/ 여름에도 봄/ 가을에도 봄/ 어디에나 봄이 있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플수록/ 봄이 그리워서 봄이 좋아서/ 나는 너를 봄이라고 불렀고/ 너는 내게 와서 봄이 되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언제라도 봄’이라고 노래했다. 필자도 어릴 때부터 이런 봄의 화사한 그리움과 간절함이 너무 좋아 첫 딸이 태어나자마자 ‘봄이 온다’는 희망을 담아 ‘보미’라고 불렀다.

2년마다 받는 직장 건강검진 결과가 도착했다. 예년과 비교해보면 많이 좋아졌다. 거의 모든 항목이 정상수치다. 수년 동안 떨어지지 않던 복부비만도 사라졌다. 그동안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탈이 생겼다. 과도한 운동으로 좀 무리한다 싶었는데 결국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 치유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그냥 쉬면 된다. 다행히 곧 회복되었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 몸에는 이처럼 신비한 회복력이 있다. 자연의 법칙이다. 무릇 모든 상처와 고통의 의미는 치유와 회복에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에는 봄의 따스함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가 지나온 가까운 역사에서도 그러하리라.

임시의정원(현재의 국회) 100주년 기념행사도 이번 봄과 함께 찾아왔다.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열망을 품고 1919년 4월10일 중국 상해에서 첫 발을 내디딘 임시의정원. 다음날까지 이어진 첫 회의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는 의미로 ‘대한민국’ 국호를 새로 정하고,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던 100년 전 그날, 대한민국의 역사는 낯선 이역 땅에서 조국을 잃은 독립운동가 29인이 봄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시작되었다. 참으로 잘 버티었다. 그 아팠던 상처와 기나긴 고통 끝에 마침내 우리들에게 와서 봄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100년 전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물론 아직도 분단국가,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현상 등 또 다른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현재 우리는 3050 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은 국가) 세계 7개 국가 중 하나다. 우리 몸도 운동으로 다치지 않으려면 사전에 충분한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이 땅 위에도 더 이상 지난(至難)한 역사의 상처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다가올 위기에 미리 충분히 대비하는 전략과 혜안을 가져야 하리라.

우선 이 아름다운 봄날에 적어도 20·30대 젊은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50·60대는 되지 말자는 성찰의 노래부터 불러보면 어떨까. 100년 전 젊은이들이 앞장선 2·8 독립선언의 외침에 어른들이 3·1 운동으로 화답했듯이, 어른이 어른답고 어른이 책임질 줄 아는 정의로운 사회, 승자독식보다는 배려와 존중이 살아있는 사회,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도 모두 법 앞에서는 공정한 사회, 특권보다는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면서 말이다. 오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벚꽃이 흩날리는 여의도 윤중로 봄빛을 언제라도 보고 싶다.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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