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비를 부르느라 연신 손을 비벼댔다/ 꽃뱀이 지나갔다 풀섶이 흔들렸다/ 새순은 촉촉한 눈매 수련처럼 수런댄다/ 바람 나 벙근 꽃잎 난분분 휘날리고/ 물오른 자작나무 거자수를 길어내듯/ 곡우물 곡우사리에 씻나락도 몸을 튼다 ‘곡우 무렵’ 전문(김복근)

곡우(穀雨)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다. 穀자는 禾(벼)자와 殼(껍질)자가 결합한 것으로, 비가 내려야 껍질 속에서 싹이 나온다. 穀의 부수가 禾(벼)로 돼 있는 것은 곡우의 가장 중요한 일이 볍씨를 담그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속담에 ‘곡우에는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고 한다.

곡우는 조기와 녹차가 서로 결부돼 있다. 유채꽃, 복사꽃 만발하는 영광 법성포에는 오는 19~21일까지 사흘간 ‘곡우사리 굴비축제’가 열린다. 곡우사리는 곡우에 드는 다섯 번째 ‘사리’를 뜻한다. 이때 잡은 기름진 조기로 만든 굴비를 ‘곡우사리 굴비’라고 한다.

울산에서는 녹찻물에 밥을 말아 굴비와 함께 먹는 것을 최고의 맛으로 친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라는 말처럼 조기는 산란을 할 때뿐만 아니라 산란을 마치고도 계속 운다. 떼를 지어 다니는 조기들이 동시에 울어대면 소형 어선의 엔진소리와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동이나 보성의 녹차밭에는 요즘 곡우를 전후로 차 마니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다. 곡우 5일 전인 이른 봄에 딴 찻잎을 덖어서 만든 우전(雨前)은 ‘첫물차’라고도 한다. 곡우차(穀雨茶)는 곡우날인 20일 잎을 따 만든 차를 말한다. 은은하고 순한 맛이 특징이며 생산량이 많지 않고, 값도 비싸서 최상품으로 취급된다.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중국의 다서(茶書)를 보면 곡우 5일 전이 가장 좋고, 5일 뒤가 다음으로 좋으며, 그 5일 뒤가 그 다음으로 좋다고 하였다”고 말했다.

▲ 보성녹차밭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복사꽃’ 전문(송찬호)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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