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 건국대 교수

▲ 신병주 건국대 교수가 지난 15일 CK아트홀에서 열린 ‘제9기 비즈니스컬처스쿨’에서 조선 왕의 리더십을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왕으로 산다는 것’ 저자
조선왕의 리더십 주제로
청렴·도덕·포용성 강조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 왕조는 1910년 일본에 강제 병합될 때까지 500여 년간 이어졌다. 27명의 조선 왕(황제)은 재위 기간 각기 다른 성향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통치 스타일을 보였다. 여론 존중, 도덕과 청렴성,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 등 그들에게 요구되던 덕목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의미하며 종종 현대정치사의 인물과 비교되기도 한다.

15일 열린 제9기 BCS 7강에서는 <왕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 신병주 건국대 교수가 ‘현재에도 되살아나는 조선왕의 리더십’에 대해 강연했다.

조선의 왕은 절대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 개국 초기 고려왕조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왕권을 견제하는 장치를 많이 만들어 왕권과 신(臣)권이 적절하게 권력을 나누어 갖도록 했다. 왕은 원칙적으로 적장자에게 세습되는 자리이다보니, 실력이나 인품이 뛰어난 사람이 늘 계승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를 재상들이 보완한다는 취지다.

신 교수는 “나름 합리적인 제도였다.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룬 시대는 태평성대였고, 그렇지 못한 시대에는 늘 비극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은 단연 세종이다. 바로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룬 시기였다. 신 교수는 “세종은 소통과 포용의 성군이었다. 집현전 학사를 통해 폭넓게 인재를 등용시켰다. 반대파였던 황희를 끌어안았고 천민이었던 장영실을 중용했다. 학문과 과학을 발전시켰고 외교에도 뛰어났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조선의 왕우로 성종과 숙종을 꼽혔다. 신 교수는 “왕의 묘호가 ‘이루었다’는 의미의 ‘성종’인 까닭이 있다. 성종은 조선 전기 국가의 틀을 만든 왕이다. 동국통감을 만들고 경국대전이라는 헌법을 완성했다. 신하들과 경연을 가장 많이 한 임금이기도 하다. 숙종 역시 재평가돼야 한다. 궁중암투에 휘둘린 왕처럼 묘사되지만, 46년간 재위하며 많은 업적을 쌓았다. 고도의 정치술로 당쟁을 조정했고 국방을 강화했다. 영·정조 중흥기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숙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무능한 왕으로는 임진왜란 때의 선조와 정묘·병자호란의 인조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백성에게 큰 피해를 입힌 전쟁을 막지 못했다”며 “임란 이후의 논공행상 논란과 삼전도의 굴육 이후 북벌정책만을 고집하며 국제정세를 오판한 점은 조선사 전체를 통틀어 적지않은 오점”이라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