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구조로 빚어진 모순
예술적 역량으로 바꾸는 도전
기여 통한 새로운 문화 창출

▲ 현숙희 무용가 전 영산대 초빙교수

“저희는 재밌는 꿈을 꿉니다. 폐지 수거 어르신의 문제가 해결되어 더 이상 저희가 필요 없어지는 날을, 저희 회사가 멋지게 망하는 그날을 꿈꿉니다. 우리함께 꿈꿔요!”

러블리 페이퍼가 매월 1만원 결제로 연간 4개의 원하는 작품들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서 받아볼 수 있는 정기구독자를 모집하는 SNS광고 문구다.

러블리 페이퍼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돕고 폐지수거 어르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해 온 단체이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노동시간을 여가 시간으로 바꿔주고 그들이 하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자 출발한 사회적 기업이다.

어디를 가도 하루에 한 두번씩 마주치는 광경. 5년 전 한 청년은 출근길에 허리에 폐지를 묶고 머리에 폐지를 이고 아슬하게 도로를 건너는 어르신을 만난다. 불공정한 산업구조, 늘어만 가는 노인인구, 도울 수 없을까, 변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도울 방법을 찾아 나선다. 어르신들의 노동가치를 온전하게 카운터하기 시작한다. 걷는 시간, 노동의 강도 등을 측정, 1㎏당 약 50원하는 폐지를 약 20배 높은 1000원에 매입,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구조의 현장을 생성하게 된다. 폐지수집 어르신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 러블리 페이퍼의 탄생이다.

러블리 페이퍼는 폐지를 업사이클링하고 작품을 담을 수 있는 캔버스를 제작, 재능기부 예술작가를 통해 작지만 특별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글귀와 그림을 담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페이퍼 캔버스 아트 작품을 탄생시켰다. 폐박스를 비싼 가격으로 구입해 생기는 마이너스를 더 많은 가치를 지닌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팔기로 하고 SNS를 통해 재능기부자를 모집했는데, 4시간 만에 150명의 예술가가 참여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 의미와 가치가 소중했기 때문이리라. 예술작품을 만들고 판매를 시작한 3개월 프로젝트가 1년의 프로젝트로 늘어나게 됐고, 지금은 작가단이 구성되어 있는 ‘사랑을 그리는 사람 기업’ 러블리 페이퍼로 거듭났다.

러블리 페이퍼의 기우진 대표는 어떤 사회적 기업이 되어야 할까 라는 고민에 앞서 왜 사회적 기업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한다. 그는 이웃을 돕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했고 회사의 목적을 이윤추구나 회사의 영속성이 아니라 사회환원 활동에 두었을 것이다. 그로인해 사회구조적 현상 때문에 거리로 내몰린 어르신들은 자원재생활동가,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사회적 시선이 가진 편견과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판매하고 얻은 수익은 다시 어르신들의 생계와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데 사용한다.

자신의 역량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판매되어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환원되는 결과를 기쁘게 생각하는 예술가의 역할도 크다. 무언가 사회에 기여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가치있는 일이 된다. 물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무형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물질적인 것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다. 재능 예술가의 사회적 기여는 일종의 저항이기도 하다. 사회의 구조 때문에 빚어진 사회의 모순을 예술적 역량으로 바꾸고 있음에랴. 기여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2017년에 이어 2018년 울산문화재단 전문기획자 역량양성 사업 멘토로 활동 당시 멘티들에게 강조했던 하나는 문화예술기획의 사회 선순환 구도였다. 문화를 이루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 자체가 문화이니 사람이 바르게 바뀌고 행동할 때 문화가 바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문화 기획자가 개인과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음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각성하고자 하는 마음과 다름 아니었다. 이제 다시 사람 자체가 문화임을 되뇌이며 문화적 선순환, 즉 예술가로서 쓸모있는 삶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한다. 춤꾼이기에 춤길의 이유를 묻는다. 현숙희 무용가 전 영산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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