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오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낙화’ 조지훈).

꽃은 정점에서 진다. 떨어져 하얀 미닫이를 붉게 물들이다 소리 없이 사라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찰나의 덧없음, 울고 싶은 꽃잎의 허무한 엔딩이다. 그럼에도 봄은 계속해서 제 갈 길을 향해간다. 소멸을 향한 전진이다. 이젠 잎들의 차례인가. 꽃 진 나무마다 돋아난 새 잎들이 제법 진지하게 연초록의 빛을 선사한다.

봄의 색채 위에 이제는 연록(軟綠)이 더해졌다. 삼월의 봄이 봄꽃의 수줍음으로 왔다면 사월의 봄은 연록의 애잔함으로 온다. 애잔함으로 다가와 봄바람에 몸부림친다. 봄바람에 몸부림칠 때마다 사월의 색채들은 서로서로 스며들어 스스로의 경계를 허문다. 경계를 허무니 본래의 나는 사라지고 없다. 순백(純白)과 진홍(眞紅)은 분홍으로 얼룩지고, 연록(軟綠)과 초록(草綠)은 푸른 사월의 배경이 되어 빛난다. 푸른 사월을 안고 경계를 허문 하늘과 강이 하나 되어 흘러간다. 삼월의 봄이 경계가 명확한 수묵화라면 사월의 봄은 봄바람의 몸부림으로 화선지에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다.

봄의 다양한 색채들은 각각 고유한 파장을 갖는다. 파장은 곧 에너지다. 우리 몸과 마음은 색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의 자극을 받는다. 이것을 활용한 치료법이 ‘색채치료’다. 색채치료는 미술치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색을 이용한 치료가 병을 없애는 극적인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개선하는 보조적인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UCLA) 심리학자 로버트 제라드(Robert Gerard)는 파란색과 녹색은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며 이 두 가지 색상을 가까이 하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그 정도를 낮추거나 해소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R. Gerard “푸른 빛깔의 정신 생리학적 효능”). 하늘과 강, 산과 들이 푸르름으로 몸부림치는, 드디어 신록의 사월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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