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요즘 필자의 마당에는 유난히 민들레 꽃이 많이 피었다. 등억마을 북쪽 간월산 꼭대기에서 내려온 바람이 지난해 등억마을 들판을 쓸고 지나가면서 민들레 갓털을 무수히 흩뿌렸으리라. 민들레는 아침해가 뜨면 꽃을 피우고 저녁이 되면 꽃잎을 오무린다. 그러다가 노란 꽃잎이 호호백발로 변할 무렵 꽃받침이 무너지면 백발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마치 제 삶을 다 한 인간처럼.

쇠똥 떨어진 길섶 보리밭 두렁/ 민들레 속씨 하나/ 낙하산을 반쯤 펼치고 있다// 잡초 속에 홀로 꿋꿋한/ 샛노란 민들레 깃발// 어느 맑고 빛나는 봄날/ 어미 꽃과 작별을 하고/ 민들레 갓털이 바람 타고 날아간다// 민들레의 절반은 바람이다// 형체 없는 바람의 아비가 그들을 선별해/ 예측할 수 없는 곳에 데려다 놓고/ 무심히 가버렸다// 민들레의 일생처럼/우리네 생도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가/ 어디선가 또 바람 한 점이 불어온다// 내가 잠깐 조는 사이/ 내 생이 반쯤 날아가 버렸다 ‘민들레의 절반은 바람이다’ 전문(김민자)

옛날 노아의 홍수 때 사방천지가 물에 잠겼다. 모든 동식물들이 달아났지만 민들레만은 발(뿌리)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못 갔다. 공포에 떨던 민들레는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이 때 하느님이 가엾게 여겨 씨앗을 바람에 날려 노아의 방주 지붕에 내려앉게 해주었다. 지난 21일은 부활절이었다. 민들레 전설은 매년 부활절마다 바람과 씨앗과 그 아비의 전설을 상기시켜 준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데, 민들레의 꽃말이 바로 ‘감사의 마음’이다.

‘민들레 홀씨’(갓털 또는 관모(冠毛))는 바늘보다도 작지만 반경 40㎞까지 퍼져 나간다. 이 갓털이 바람에 떠 다니는 원리는 90~110가닥의 털 사이 빈 공간을 지나는 공기 흐름에 기인한다(과학저널 네이처). 이 공기흐름 때문에 씨앗이 곧바로 낙하하지 않고 낙하산처럼 안정적인 비행을 할 수 있다. 갓털이 땅에 떨어져 쇠똥을 먹고 흙 속으로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두 손으로 뽑을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박힌다. 그래서 대중가요에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가사도 나왔다.

요즘 시골 들판과 도시의 인도(人道), 아파트 계단 틈까지 민들레가 온통 장악했다. 오죽하면 ‘문둘레’에까지 ‘민들레’ 꽃이 피었을까. 바람이 많은 계절 4월, 김민자 시인의 시처럼 민들레의 절반은 바람이다. 우리네 생도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가. 어디선가 또 바람 한 점이 불어온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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