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협력업체가 상당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경영자나 근로자나 별 차이가 없다. 임단협 협상 장기화로 부도를 걱정했던 때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협상시작 110일, 파업 42일 만에 지난 5일 타결된 잠정 합의안이 알려지면서부터 깊어진 듯 하다. 특히 임금부분 합의내용은 당장 발등의 불로 인식되고 있다. 납품단가 인하압력이 사실상 예고된 입장이니 여간 고민이 아니다. 가뜩이나 매년 납품단가의 3∼5%를 막무가내로 인하시켜 온 처지여서 부담감이 더 커졌다. 그래서 협력업체 경영자들은 이익을 덜 내는 묘수찾기에 골몰해야 할 입장이다. 손익계산서상 이익이 많을 경우 원가인하 요구가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사기도 날이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납품단가 인하가 언제 자신들의 임금삭감으로 이어질지 전전긍긍한다. 원청업체의 임금인상을 위한 희생양 역할을 또 떠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무너질 것만 같을 것이다.

사기꺾인 자동차 협력업체

울산 북구청 홈페이지(www.bukgu.ulsan.kr)에 최근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하소연이 이어져 눈길을 끈다.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 직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인데다 임단협 타결 이후 볼멘소리가 이어져 흥미롭다. 그동안 억눌려온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현대차 불매운동 주장마저 제기하고 있다.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오만함과 갖가지 접대요구 사례까지 열거해 자칫 폭로전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2차 협력업체에 10년째 다닌다는 한 네티즌이 밝힌 접대요구 사례는 참으로 씁쓸하다. 부서 회식비 카드대금과 개인차량 유지비용은 물론 개인 흉사에 조의금 액수까지 정해 통보한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런 관행은 협력업체와 하청업체가 많은 업종일수록 심하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인데도 말이다.

또다른 네티즌은 현대자동차 협상 타결을 환영한 양대 노총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들이 모두 대기업 소속이어서 자기 몫만 챙길 뿐 하청업체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기 회사에서 연봉 2천500만원을 받는 20년 경력자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지만 회사가 어려우면 해고 1순위라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사이버 논쟁은 열악한 처지의 중소 협력업체 직원들이 스스로 찾는 카타르시스인지 모른다.

경제현실 간과한 임단협

현대자동차의 올해 임단협은 공존공생 해야 할 협력업체 뿐만 아니라 국민여론을 들끓게 했다. 노조는 노동귀족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일부 언론에 의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하는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금액만 갖고 말하는 바람에 전국적인 망신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임단협에 대한 비판여론은 여전히 식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노사합의로 임금부분에 합의한 것을 왜 왈가왈부 하느냐고 여겨서는 안될 듯 싶다. 청년 실업자가 증가하고 수십군데 이력서를 내도 갈 곳 없는 경제현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이 줄을 잇는 작금이 아닌가.

이번 임단협의 비용부담을 차값 인상과 납품단가 인하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라면 더욱 문제다. 말 그대로 무사안일한 경영이며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할 게 뻔한 이치다. 더 많이 일하면서 임금은 더 적게 받고 근무환경은 턱없이 열악한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납품단가 인하압력을 피하기 위해 협력업체 경영자들이 이익을 덜 내는 지혜를 짜내야 하는 모순은 사라져야 한다. 임금인상분을 차값 인상으로 만회하려 한다면 ‘포니신화’로 시작된 현대자동차는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없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자세는 그들을 현대판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북구 홈페이지의 논쟁은 이런 해묵은 문제를 치유해야 한다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절규이며 피끓는 메시지다.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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