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후쿠오카 아트뮤지엄

▲ 후쿠오카 아트뮤지엄 2층 메인전시장. 나란히 걸린 앤디 워홀의 ‘엘비스’(왼쪽)와 장 미셸 바스키아의 ‘무제’.

3년간의 리모델링 끝내고 지난달 재개관
자축 특별전서 대표 컬렉션 250점 선보여
달리·쿠사마 야요이등 유명작가 작품 포함
워홀 말년에 만나 공동작업 했던 바스키아
두 사람의 작품 나란히 한 벽면 차지 눈길

일본 후쿠오카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한 곳이다. 후쿠오카현청 소재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약 150만 명이다. 일본 열도에서 6번째이고, 규슈에서는 제일 많다. 면적은 약 340㎢. 울산을 3등분 한 면적이지만 그 곳엔 이미 3개의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우선 후쿠오카 현립미술관이 있다. 1964년 문화회관으로 개관한 뒤 1985년 전면공사를 거쳐 미술관으로 재개장했다. 두번째는 후쿠오카 아트뮤지엄이다. 다른 명칭으로는 후쿠오카시미술관(福岡市美術館). 즉 시립미술관이다. 1979년 개관했고 1999년부터는 아시아권 현대미술을 모아 부설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뮤지엄까지 따로 운영한다.

지난 3월 말, 후쿠오카 아트뮤지엄을 일부러 다녀왔다. 수년 간 문을 닫았다 최근에서야 다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개관 이후 수십년이 흐르면서 모든 시설이 낡고 더러워져 2016년부터 전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3년 여의 공사를 거쳐 지난 3월21일 드디어 재개장했다. 문을 연 지 3일 만의 방문이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현대적인 느낌은 나지 않았다. 실내의 공간 구조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미술품의 보관과 전시에 어울리는 마감재와 조명, 습도조절 기능을 보강했고 화장실과 계단 등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 정도만 바뀌었다고 한다.

▲ 단조로운 구도지만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멋을 뿜어내는 벚꽃 병풍.

다만 아트뮤지엄과 인접한 도심 속 호수공원 오호리공원에서 미술관으로 좀 더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방점을 둔 듯 했다. 그래선지 미술관의 동선은 미술관 안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미술관 밖으로 1층과 2층 어느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연결 돼 있었다.

‘리뉴얼 오픈’을 자축하는 특별전 주제는 ‘이것이 우리의 컬렉션’이었다. 전시는 5월26일까지. 전시는 컬렉션 전시실과 갤러리 A에서 F에 이르기까지, 2층 주요 공간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아트뮤지엄이 40년 간 수집 해 온 1만6000점의 컬렉션 중 대표적인 작품 250점이 모두 나와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마르크 샤갈, 쿠사마 야요이 등 소장품 중 인기있는 작품 앞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의 발길이 오래 머물렀다. 고미술 컬렉션과 한국,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 지의 고대미술 명품들도 전시됐다. 전후 등장한 전위예술그룹 ‘큐슈 파’의 작품과 큐슈 지역 고대 도자전도 함께 마련됐다. 해설자는 개관 이래 최대 규모 컬렉션 전시라고 소개했다.

가장 눈에 띈 작품은 앤디 워홀의 ‘엘비스’(1963)와 장 미셸 바스키아의 ‘무제’(1984)였다. 두 작품은 전시장의 가장 너른 벽면에, 가장 밝은 조명 아래 나란히 걸렸다. 피부색과 세대는 달랐지만 짧은 시간 불꽃같은 예술혼을 뿜어내며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두 거장이 머나먼 아시아로 건너 와 그들 인생의 각별한 사연을 보여주는 듯 했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바스키아(1960~1988)는 10대 때 이미 거리미술가로 활동했고 20대 초반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1980년 그의 나이 스무살 때, 이미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올라있던 앤디 워홀(1928~1987)에게 자신의 작품 몇 점을 보여줬다. 워홀은 그의 천재성에 탄복했고 이후 공동작업을 하면서 죽을 때 까지 약 7년간 함께 했다. 몇차례 진행된 공동작업은 워홀이 먼저 작업을 하면 바스키아가 그 위에 덧그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워홀이 담낭 수술을 받은 뒤 심장발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바스키아는 정신적 지주를 잃어버린 상실감으로 피폐해졌고, 이를 달래려고 약물에 의존했다. 결국 그는 1년 뒤 헤로인 중독으로 그의 작업실에서 스물일곱 짧은 생을 마감했다.

▲ 미술관과 오호리호수공원을 연결하는 계단광장.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놓여있다.

워홀은 대량유통되는 상품이나 유명인의 이미지를 같은 화면에 여러 번 반복해 일약 팝 아트의 선구자가 됐다. 그의 전시작품 ‘엘비스’는 영화배우 엘비스 프레슬리를 실사스크린 한 작품이다. 엘비스 이미지가 2개인 이 작품은 작가 생전에는 알려지지 않다가, 사후 그의 스튜디오에 걸려 있던 것이 알려졌고 아트뮤지엄이 직접 구입했다고 한다. 같은 형식으로 엘비스의 이미지가 8개인 워홀의 다른 작품은 지난 2008년, 1049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바스키아의 ‘무제’는 스물 네살 청년이 그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보였던 그의 작품에는 해골이나 신체의 일부분을 표현한 그림이 많다. 거친 필치와 미완성으로 보이는 화면이 특징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물이나 인체를 비롯해 동시대의 과학과 문화와 관련한 이미지가 중첩된다. 거리의 부랑아에서 하루 아침에 스타 예술가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인생은 영화로 제작될만큼 드라마틱 했다. 문화부장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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