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 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김수영전집〉, 1981, 민음사, 1960.4.3.탈고)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늘을 쳐다보고 살아가는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 일상사에 얽매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우리들에게 늘 자성할 것을 목놓아 외친 시인이 김수영이다, 우리들의 적은 언제나 "우리들의 곁에 있다"고. 그 외침의 넓이는 시적 화자의 설정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 시의 화자는 "나"가 아닌 "우리"이다. 우리들의 "적"은 선량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 정권, 억압과 불의의 비민주적인 세력, 나태와 매너리즘의 일상, 이런 것들이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있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지, 자아성찰을 위한 결의가 온 세상을 가득 메우게 하자고 노래한다. 이러한 강한 의지는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고 하여 4월 혁명을 미리 예감하는 준열한 역사 의식에까지 나아간다. "하늘과 땅"은 공간이다. 무시간이다. 시간을 뛰어넘는 영원의 공간이다. 혁명 4월의 "하늘과 땅"을 곱씹어보아야 한다는, 시인의 메아리가 들린다. 지금, 이 4월의 "하늘과 땅"에!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조한용 우신고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