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련 아동문학가

<아버지의 손>(마이런 얼버그)은 청각장애인인 부모 밑에서 자란 단편적인 일화들을 사건의 순서와 상관없이 펼치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대공황 때였지만 마이런의 아버지는 신문사에 취직했다. 윤전기가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의 사막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청각장애인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견뎌내지 못하는 곳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면서도 슬펐다.

백화점, 공연장, 옷가게, 식당은 마이런을 힘들게 하는 장소였다. 아버지의 통역사가 되어야 했기에 늘 지치는 곳이었다. 그런 날 마이런은 늘 도서관을 들렀다. 책벌레가 되어 섭렵한 숱한 단어들은 작가의 길에 든든한 발판이 되었다. 현란하리만치 분주한 부모의 손짓이 무엇보다도 훌륭한 문장이었다는 사실도 왕성한 독서로 깨달았다. 내용도 감정도 말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수화의 마법도 이해했다.

그는 스스로를 아버지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공구함 속의 연장 같았다고 말한다. 간질을 앓는 동생의 보호자까지 되어야 했음에도 그의 이야기는 우울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생색내지 않으면서 객관적이고 담담한 서술 덕분이다.

수화에도 사투리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감정도 있고 속도도 있다. 현란함과 진중함이 있고, 요란함과 조용함이 있다. 마이런의 아버지에게 손은 소리 없는 수다를 위한 도구였다. 그는 바르고 고운 말을 하기 위해 손을 깨끗이 씻는다.

나는 고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영혼을 맑게 닦으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청각장애인들의 수화를 의사전달을 위한 힘겨운 몸짓 정도로만 이해한 무지와 함께 스스로를 반성했다.

가족은 힘이다, 다양한 소리로 가득 찬 세상을, 진공상태에서 표류하는 외딴섬으로 사는 청각장애인들의 외로움 헤아리기, 신이 준 특별한 선물인 듣는 능력에도 감사하자. <아버지의 손>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기에 알맞은 5월의 책이다. 장세련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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