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보이지 않아 그 마음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닿지 않아 그 마음 사라졌다 할 수 있을까. 저기, 꽃 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된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스승의 날을 즈음에 읽었던 한 신문 기사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던 날이 있었다. 여전히 잊혀 지지 않는, 잊지 않아야 할 11명의 선생님 이야기였다.

2학년 2반 담임인 J 선생님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실에 물이 차오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주고 학생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에게 구명복을 입혀야 한다.”며 5충 객실에서 4충 객실로 내려갔다가 구명복을 입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생존자들은 J 선생님이 학생들을 밀어 올리다가 탈진하는 바람에 배를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증언했다. 구조대가 선생님을 발견했을 때에는 다리에 시퍼런 멍이 나 있고 발목이 부러져 있었다.

4월16일에 태어난 2-3반 K선생님은 자신의 생일 날 세상을 떠났다. 배가 기울자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4층으로 내려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2년차 새내기 교사로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C선생님은 사고가 나자 “걱정하지마. 너희들부터 나가고 선생님은 나중에 나갈게.”라며 제자들을 구조했지만 정작 본인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4층 객실에서 발견되었다.

사고당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제자 한명 한명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목이 터져라 빨리 배에서 탈출하라고 외치며 학생들을 구조하다 끝내는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K 선생님. 그의 아내는 참사 직후 남편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남겼다. “더 이상 숨어 있지 말고 아이들과 선생님 손 꼭 붙잡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와 줘.” K 선생님은 사고가 난지 무려 3년이 흐른 2017년 5월5일 어린이날, 유해의 일부가 가족들 품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50대 후반의 Y선생님 역시 제자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입히고,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선실로 들어 가셨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한 명의 제자라도 더 구하려 안간힘을 썼던 11명의 선생님들이 떠났다. 선생님들은 20~30대가 다수였다. 아이들처럼 그들 역시 못다 핀 꽃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우린 선생님이니까…. 끝까지 남아 있어야지. 아이들이 거기에 있는데….’ 아마도 그런,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난 주말에 고향집엘 다녀왔다. 자꾸만 작아지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밟히고 밟혔다. 푹 꺼진 깊고 깊은 두 눈에 슬픔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 타인이 잘 살 수 있게 내 영토를 줄이는 것.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내가 자꾸만 작아지니까 슬픈 거고.

5월은 여전히 따뜻하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 따뜻한 마음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날들이다. 비록 나의 크기가 자꾸 작아지고, 그래서 자꾸 슬퍼지더라도 마음을 다한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의 마음으로 파고들어 마음으로 ‘툭, 툭’ 부딪친다.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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