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지난달 30일, ‘익산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이 열렸다. 백제 무왕 때인 639년 사리를 봉안하고 탑이 건립된 지 1380주년이 되는 해이고 1999년 해체 보수가 결정된 후 20년만이다. 새로운 역사를 쓰는 날이었다.

미륵사지 석탑은 반쯤 파괴된 부분에 일제가 콘크리트를 덧씌워 흉물스러웠다. 국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아 보기에 딱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해체되고 보수하는 과정이 길어도, 찾아 갈 때마다 높이 휘장을 두르고 있어도 마음은 뿌듯했다.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었으니까.

오랜 기다림 끝에 미륵사지 탑을 보러갔다. 휴일이 아닌데도 너른 절터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새롭게 단장한 국보 11호를 보기위해서다.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이 탑을 빙 둘러서서 푸릇한 기운을 뿜어냈다. 먼 고장에서 버스를 타고 온 한 무리의 노인들이 경배하는 마음으로 목을 쭉 빼 올렸다.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도 보이고 사진기를 열심히 눌러대는 이들도 많았다. 선생님을 따라 온 사학과 학생들도 한참을 머물렀다.

나도 설렘을 안고 석탑을 향해가다 머뭇머뭇하며 서고 말았다. 엉겨 붙은 시멘트를 걷어내고 깨끗하게 닦여진 돌들이 잘 쌓였는데 뭔가 이상했다. 원 부재를 81%까지 최대한 재사용했다고는 하나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흔적이 싹 사라진 느낌이었다. 깨끗한 새 옷을 갈아입고 의연히 서 있는데 나 혼자만 마음을 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속도’보다는 ‘정성’을, ‘추정’보다는 ‘사실’에 중점을 둔 우리 시대의 결과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사라지겠지만 석탑은 제자리에 남아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할 것입니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를 담당했던 실무책임자가 했던 말이다. 그렇고말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할 탑에 꽃비가 내리고 미륵불이 이 땅에 내려와 설법을 하게 되는 날을 그려보며 절터를 나왔다. 미륵정토를 꿈꾸며 거대한 불사를 했던 왕과 왕비도 탑돌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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