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주최의 진주사건 관련 좌담회에
정작 신경정신의학회는 빠져서 황당
정책 입안에 전문가의견 배제돼서야

▲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10여 년 전 일이다. 젊은 여성이 사람들이 감시한다며 몇 달간 집밖에 나가지 못하다가 가족들에 의해 입원하였다. 조현병 진단 하에 치료하면서 조금씩 증상이 호전되던 중, 갑자기 가족들이 퇴원을 요구하였다. 아직 이르다고 말렸지만 가족들은 이미 굿을 예약하고 선금도 냈다고 한다. 나는 환자 치료를 위해 보호자의 신뢰를 얻는 경쟁에서 정신과 의사가 무당에게 패배했음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했다.

다행히 요즘 이런 사례는 보기 어려워졌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소문은 여전히 버거운 상대다. 그런데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가 나타났다. 무당보다 더 무서운 선무당이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를 배경으로 정신질환 정책을 주장하는데 정작 일선의 전문가는 접근하기 어렵다.

지난 4월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 등이 주최하고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 등이 주관하여 ‘진주 사건은 막을 수 없었는가?’라는 긴급좌담회가 열렸다.(메디칼타임즈 2019.4.27.) 발제자와 토론자를 살펴보니 법학전공 교수와 정신질환 관련 단체 등이다. 정신질환의 전문가라 할 신경정신의학회는 배제되었다. 주최측은 한 명의 정신과 교수에게 연락해봤고 긴급하게 기획한 모임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궁색하게 들린다. 비슷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017년 8월 ‘정신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국제 포럼’이 보건복지부 공동주최로 열렸다. 일본, 호주, 대만의 정신과 의사가 발표를 하는데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는 일정에 없었다. 모양이 어색했던지 보건복지부는 개최일 3주 전에 신경정신의학회에 참여를 요청했다. 학회는 급히 연자와 좌장을 확정해서 알렸는데, 주최측은 포럼을 불과 10여 일 앞두고 연자 교체를 요구해왔다. 당시 학회가 정한 연자는 그해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의 문제점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하던 교수였다. 주최측은 대안으로 다른 교수를 지명해서 제안했지만 학회는 거절하고 불참하였다. 2년 전 포럼을 공동주최하고 기획한 단체의 책임자와 지난달 긴급좌담회의 단독 발제자는 우연찮게도 같은 인물이다.

물론 법학자나 관련 단체도 정신질환자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하여, 일선의 전문가를 배제한 채, 부정확한 정보와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와 국회에서 비판 없이 정책으로 수용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보도된 주요 주장에 대하여 지면을 통해 반박한다.

긴급 좌담회 발제자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경찰이 진주 참사 피의자에 대한 병력을 알았건 몰랐건 응급입원(경찰이 환자를 데려가 의사 진단을 받은 뒤 3일간 입원시키는 제도)을 시킬 수 있었다. 막을 수 있는 피해를 막지 못했다”고 짚었다.(한겨레신문 2019.04.26.) 경찰에 책임을 돌리긴 쉽지만 이 사건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나라 응급입원 제도는 그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법에 의하면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으로서 자해나 타해 위험이 크고 상황이 매우 급박하여야 한다. 욕설이나 시비가 잦고 이웃이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경범죄인지 응급입원 대상인지 경찰이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살기도를 하거나 폭력을 시도하면 그제야 경찰이 개입해왔다. 이 방법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수반한다.

게다가 그간의 비극적 사건들(강남역 살인사건, 작년 말 강북삼성병원 의사 살인사건, 4월 말 부산의 친누나 살해사건 등)을 현실에 대입해보면 경찰이 응급입원을 시행할 방법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 환자의 증상 악화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 사람은 가족인데도, 위 사건의 환자 보호자가 입원을 시도하더라도 불가능할 뿐더러 오히려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 정신의료체계에 커다란 공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공백을 초래한 비현실적 법조항을 지지했던 제교수는 비판자 없는 긴급좌담회에서 “정신병원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둥 현안과 동떨어지거나 지엽적인 제안을 하였다. 문득 이 나라의 다른 분야 정책들도 이런 식으로 전문가를 배제하고 결정되나 생각하니 몸이 떨려온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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