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전시된 5·18민주화운동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권위주의에 대한 투쟁과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는 5·18민주화운동은 탈바꿈 과정을 통해 고통, 저항, 공동체를 경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8일 학계에 따르면 사회학자인 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지난 15일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이 개최한 제18회 중민포럼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5월 광주를 '탈바꿈'이라는 프레임으로 분석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심 교수는 먼저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일반적인 항의 시위나 진압과는 다른 양상이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광주에 경찰력이 아닌 공수부대가 투입됐고, 공수부대가 들어갔음에도 쉽게 시위를 진압하지 못했으며, 계엄군이 광주시에서 물러나 치안 공백 상태가 됐을 때 시민들이 배려하는 공동체 모습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탈바꿈 이론을 차용해 1980년 광주는 '고통받는 광주'에서 '저항하는 광주'를 거쳐 '공동체 광주'로 나아갔다고 진단했다. 세 단계는 각각 애벌레, 고치, 나비에 대응한다.

그는 "광주는 처음에 속수무책으로 마구 짓밟히며 고통을 받았고, 이어 물러설 데 없는 막다른 곳에 내몰리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온갖 시도를 했다"며 "마지막에는 목숨 건 저항, 울분이 불러온 공감대, 봉쇄가 초래한 단결을 통해 단기간이지만 절대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이어 "무자비한 강경 진압을 통한 살상이라는 파국적 충격 메커니즘이 저항을 불러왔고, 저항을 통해 패러다임 전환과 공동체 의식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당시 광주가 받은 충격은 무자비한 진압, 진실 은폐와 왜곡, 봉쇄와 고립이 원인이며, 패러다임 전환은 도덕적 정당감 획득과 정체성 변화를 통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80년 5월 27일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이 다시 진입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인간존엄의 공동체 가치, 소중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도청 사수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0년 광주는 각자도생을 넘어 존엄한 공동체를 만들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며 "광주 시민은 '폭도'나 '빨갱이'가 아니라 배려하고 존중하는 민주적 시민임을 보여줬고, 여기에는 코스모폴리탄적 심성과 연대가 작동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경상일보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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