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팩트를 각자 논리로 해석하며
내생각과 다른 ‘님 생각’을 배척하면
함께 나누는 행복은 느낄수 없게 돼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최근에 알바생과 사장님의 동상이몽(同床異夢) 광고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사장님은 알바생이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쉬지 말고 완벽하게 일해주기를 바라고, 알바생은 친구가 오면 외출도 하고 싶고 사장님이 안 보면 대충대충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공감된다. 언제까지 어린애 취급이냐는 자녀와 갈등하는 부모와의 생각도 그렇다.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마치 소유물 취급당한다는 부부 생각도 그러하다. 오늘도 국회에서는 동일한 팩트(fact)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각자의 논리로 해석하여 강변하고 있다. 모두가 그건 님 생각이고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아. 그러니 네가 양보해야 된다는 이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양보를 하게 되면 마치 굴종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그래서 합의가 어렵다. 그러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서로에게 좌절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서로 질책한다. 오죽했으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황금률(黃金律)도 ‘다른 사람이 해 주었으면 하는 행위를 하라’는 것이지 않은가. 남을 위한 배려는 때로 자기의 희생과 손해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행위를 감히 실천하는 사람을 매우 존경하고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의 저자 성유미 원장은 이기적인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설사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며 합리화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주체이듯, 상대 또한 나의 들러리가 되고 싶어 하는 주체가 아니다. 나의 소망이나 욕구만큼 누군가의 소망도 존중해야 ‘건강한 관계’가 만들어진다.”라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우리들은 남의 이야기 따위는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 상대방에 대해 편견(偏見)도 심하다. 오만(傲慢)해진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심해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이 있다. 오직 진정한 사랑만이 결혼의 조건이라고 믿는 여주인공(엘리자베스)은 남주인공(다아시)이 그녀의 언니가 명망 있는 가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아시 친구와의 결혼에 반대한 것을 알고, 그를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 찬 속물로 여기며 떠나게 된다. 그러나 먼 훗날 뒤늦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오만과 편견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줄거리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라는 명언과 함께.

이처럼 우리가 누구를 안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조차도 상대 자체의 진실보다는 상대에게서 알아낸 일부 말과 행동의 얕은 정보만으로 자의적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상대의 전체 인양 착각한다. 물론 ‘님 생각’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도 언제든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나온 많은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오만과 편견 속에서 살아왔을까. 광활한 우주 속 티끌 같은 지구에서조차 더 좁쌀스럽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리석게도 나 또한 다른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이것도 ‘그건 님 생각’이라고 위로하며 치부(置簿)할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그건 님 생각’ 일 수 있다.

우리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자. 이젠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니라, 각자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의 행복을 함께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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