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장생포 세창냉동창고
문화·예술등 새로운 가치 부여
복합문화센터로 생명력 불어넣어

▲ 현숙희 무용가·전 영산대 초빙교수

비가 그칠 기미는커녕 하염없이 내리고 진혼무를 추고 있는 의상을 흠뻑 적셨다. 분장한 얼굴, 곱게 빗어 땋은 머리, 새하얀 버선은 빗물과 흙과 엉켜 난장을 이뤘다.

장생포 초등학교를 다녔던 필자에게 어린 시절 세창 냉동창고는 두려움의 기억이다. 학교 뒤편에 덩그러니 우뚝 경치를 막아선 건물은 위협적이며 가히 무언의 폭력자였다.

지난 5월18일 토요일 정오. 민주항쟁의 슬픔과 분노의 흔적으로 세상이 들끓은 날, 장생포에서는 ‘세창 냉동 창고 테스트 베드 문화적 실험 활동‘ 개막식이 있었다. 빗속에서 진행된 행사는 예술적 표현을 통한 타인과의 만남을 주도하고, 서로의 문제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나 사회에 대한 주목을 유도하려는 준비된 고민과 흔적들로 야심차게 진행됐다.

울산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있었고, 원양어업의 근거지였던 장생포항에는 수산물 가공창고의 역할을 거뜬하게 해 낸 세창냉동 창고가 있었다. 어업이 저물면서 애물단지가 된 세창냉동 창고는 과거의 장생포를 기억하는 기념관으로 재생되기 위한 용트림 직전이다. 복합문화센터로서의 기능으로 건물을 재생하는 것이다.

기능을 다한 산업용 건물을 헐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넣으려는 움직임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시작되었다.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건물이 있다면, 영원성과 지속성이 있기 때문에 낡고 오래된 숨겨진 자산, 산업, 유산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산업의 몰락이 가져온 산업의 공간에 재생을 통해 어떤 기능을 부여하는가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흐름이다. 산업유산을 재활용한다는 것은 재생으로 어떤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창의적인 생각을 남게 한다. 낡고 오래된 것이 때로는 더 창의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임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울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센터장 시절이었던 2013년 9월에 일본탐방연수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기간 중 만난 나오시마, 이누지마, 야마구찌 정보예술센터, 교토 만화박물관 등은 재생이라는 고민 지점의 답을 보여줬다.

문화유산을 단순히 문화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어떻게 남길 것 인가를 고민하는 접점을 만났기 때문이다. 오래된 유휴시설을 부수고 다시 짓기보다는 외형을 보존하되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 예술, 관광 등 도시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은 주민공청회를 충분히 거친 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주민들을 위한 배려까지도 포함한다는 점이었다.

장생포 냉동창고의 변화도 주민들의 의사와 요구는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좋은 것을 지어주겠다는 행정 중심의 사업으로 흐르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오시마나 이누지마 같은 버려진 섬을 재생하는데는 기업가의 철학이 돋보였다.

후쿠타케 소이치로 베네세 홀딩스 이사장의 경영이념은 ‘공익자본주의’이다. 기업 활동의 목적이 ‘문화’이며 ‘경제는 문화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기업가가 있었기에 작은 섬마을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도시재생 사업은 일상생활과는 떨어져 있던 산업시설에서 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꿈꾼다. 낡은 폐건물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미래를 꿈꾼다. 낡은 것을 통해 혁신하고 과거의 공간에서 미래의 시간을 만나는 공간을 꿈꾼다.

꿈꿀 수 있는 공단의 도시 울산. 지역 곳곳을 둘러보면 공업도시라 지칭되어 오던 울산의 문화예술과 접목되어 질 수 있는 소재가 널려있음을 인지한다. 빠른 시간 내에 버려진 공간들에 생명력이 부여되길 절실하게 바래본다. 현숙희 무용가·전 영산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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