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종수 울산 개인택시기사

동물의 세계를 보면 동물들이 서로 몸을 비비고 입맞춤을 하고 다리와 날개 짓으로 교감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 이런 행동들은 서로 친밀감을 쌓거나 애교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하물며 인간도 상대와의 친밀감을 나타내기 위해 악수나 포옹을 하는데 역시 짐승이나 사람도 똑 같은 본능의식에서 나오는 몸짓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교감을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

가령 친구 간에는 그냥 반가움에 하고, 연인 간에는 이성적 감정에서 하고, 국가정상 간에는 외교적인 친밀감을 과시하기 위해 하는 것이 보편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부모자식간의 포옹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숨어있다. 여기에는 사랑, 은혜, 연민, 원망, 용서, 미안함 등등 감정들이 응축되어 있어 포옹이란 행위로 그것을 녹일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포옹은 행위자체가 무언의 약속이고 다짐을 의미한다 하겠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부모자식간의 포옹은 그리 쉽게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다. 보통 좋은날에 흥에 겨워 부모님을 껴안는다거나 때로는 슬픔에 젖어 서로 껴안을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 부모님에 대한 깊은 사랑의 포옹을 해 본적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수많은 감정들을 포옹이란 몸짓으로 표현할 때 미움도 사랑도 다 녹일 수 있는 강렬한 힘과 믿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기대와 원망, 오해 같은 감정들이 부모님의 큰 사랑의 그릇에 누(累)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조건과 이유가 없는 천륜(天倫)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 나는 청년이고 당신은 노인이다 고 생각한다. 그게 마냥 그 자리에서 바라볼 수만 없는 것이 세월이다. 언제 내가 청년이고 언제 벌써 노인이냐 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 변하기 때문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깨우침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겸손을 배우고 용서와 사랑을 깨우쳐 인간 본연으로 돌아갈 때 인간의 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작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후회 아닌 후회를 해 본다. 그것은 지금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포옹을 해 보지 못한 것이 왠지 모르게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포옹으로 느끼는 체취와 따뜻한 가슴, 늙으신 몸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사랑과 미안한 감정들을 포옹으로 마음껏 녹여보고 싶었다.

이제 와서 아쉬움에 후회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가 평소에 포옹이란 행위를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때때로 기회가 생길 때 마다 부모님께 사랑의 포옹을 해 보는 것도 그만큼 신뢰와 교감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포옹은 부모님에 대한 모든 감정들을 녹일 수 있는 유익한 방법이기도하다. 자식으로서 물질적인 도움만이 부모님에 대한 보답의 전부가 아니고 사랑의 교감을 몸으로 느낄 때 더 행복감에 젖게 된다.

사랑의 교감은 서로 주고받는 위치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한 애기가 나한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지만 그 애기를 바라만 봐도 자신도 모르게 잔잔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은 그 애기라는 존재에 대해 사랑의 시선을 먼저 주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들이다. 그렇듯이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의 고향이 있고 뿌리가 살아있다는데 대해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희생으로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며 부모님의 존재 가치에 대해 깊은 성찰과 사랑의 실천의지를 다질 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를 찾으려면 내 뿌리와 성장의 은인이 바로 부모님이란 것을 깨우칠 때 그 사랑의 은혜에 무한한 감사와 빚진 것을 알게 된다. 오월의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의 노래가 꽃잎마다 피어나고 생존의 부모님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그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일년 내내 꽃피었으면 한다. 살아 생전 사랑하는 부모님의 가슴에 사랑과 용서의 포옹을 해보는 것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변종수 울산 개인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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