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신 장군님의 사진을 저렇게 허름한 곳에 비를 맞도록 두고 갈 수는 없습네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고 조건반사적으로 행해진 사건(?)이었다. 얼마전 대구 유니버스아드 대회에 온 북한 응원단이 지난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악수하는 사진이 인쇄된 환영플래카드를 나무위에 올라가 떼어냈다.

 곱고 순진하게만 비춰진 이들 "미녀" 응원단들은 울먹이면서 장군님의 사진을 비 맞게한 당사자들을 원망했다. 그리고는 플래카드를 곱게 편 채로 모시고(?) 당당하게 사라졌다.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은 그 모습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나 이질적인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오히려 내쪽이 당혹스러웠다. 올핸 유난히 많은 비로 인한 사건도 많았지만 이번 "장군님 플래카드 철거" 사건은 단연 압권이었다.

 요즘들어 상식을 벗어난 사건사고로 혼란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간이 작은 보통 사람들은 쇼크에서 벗어나려면 또다른 충격요법이 필요할 정도다. 혹자는 신문사로 전화해서 가뜩이나 불경기로 우울하고 괴로운데 왜 매일 밥맛 떨어지는 어두운 기사만 가득채우냐고 질타한다. 그럼 괴로울때 잘 입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얘기하면 기분 좋겠는가 반문하지만 마음만 더 무겁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삶이라는게 인간적이고 훈훈한 얘기가 나올리도 만무하겠지만 주위에 그렇고 그런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가 때론 위안이 될 수도 있다며 변명 아닌 변명도 해 본다. 나라 꼴이 희망없어 보이는데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하는게 오히려 죄스럽지 않냐며 되받아친다.

 정치판은 늘 패거리 싸움박질이고 이익단체의 요구는 봇물을 이루고, 이념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데 정부정책은 제자리를 못잡고 허둥된다. 이런 판국에 고상하답시고 자존심이나 세우고 허울좋은 교양만 찾아야 겠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는 말이 밥먹듯이 나오는데 "사랑타령"만 하고 있어야 겠냐고 억지도 써본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비록 한숨은 짖지만 희망을 갖고 산다고. 이들이 얼굴 펴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고. 언론은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따진다.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며칠전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알고 이젠 그 부끄러움마저 희석된다. 한 TV 홈쇼핑의 캐나다이민 알선상품에 신청자가 몰려 첫회 방송이 조기종영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단 80분만에 983명이 신청해 단일품목 단일방송시간 사상 최고 주문기록을 세우면서 175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고 하니 도대체 어느 나라 상황인지 의심케 한다. 최근들어 경기침체와 취업난은 물론 월급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 불안정한 장래 고용문제 등을 비춰볼 때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언론인으로서 이들을 설득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는 이들에게 더 좋은 기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주어진 기회를 박탈하는 일은 없어야 겠기에 하는 말이다.

 모 제조업체 CEO가 "기업하는 사람은 "애국자 바보"다"라고 말했다. 노사불안에다 정책혼선 등으로 기업하기 어려운 여건에도 투자해 기업하는 사람은 "바보"지만 그 바보로 인해 나라가 살아가니 기업가는 "애국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할 말이 생겼다. 온갖 탈법과 편법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회 분위기에도 정직하게 살다가 손해만 보는 "바보"가 얼마나 많냐고. 그러나 그 바보의 정직과 성실이 그나마 사회의 버팀목이 되니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냐고. jocap@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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