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에/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누워있는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감꽃’ 전문(정완영)

초등학교 때 아침에 일어나면 감꽃 줍는 것이 취미였을 때가 있었다. 밤새 떨어진 감꽃은 오동통하고 탐스러웠으며 어찌보면 팝콘같은 것이었다. 이슬 맞은 감꽃이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해 밭에 떨어지면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을 한 두번 치고 떼구르르 제 자리를 찾아 간다.

짚을 연결해 긴 끈을 만들고 그 끈에 감꽃을 한나씩 꿰면 목걸이가 된다. 할머니 목에 목걸이를 한번 둘러주고 마루 기둥에 걸어 두었다. 해가 중천을 향해 솟아 오르고 처마 끝에 햇볕이 감아돌아가면 앞산 울창한 숲 속에서 뻐꾸기가 계속 울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감꽃은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이는 다음날 아침 또 감꽃을 주우러 나갔다.

감꽃이 떨어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그 빨간 감을 깎아 말리면 곶감이 된다. 감꽃이나 곶감은 발음이 비슷하지만 감꽃은 맛이 떫은 듯하지만 예쁘고, 곶감은 조금은 못생겼지만 한 때 떫디 떫었던 청춘을 모두 거친 뒤 단맛만 남았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에 대해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고 말했다. 필시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감꽃 목걸이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비단 물결 남실남실 어깨춤 추고/ 머리 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면/ 달밤에 소금쟁이 맴을 돈단다 … 동요 ‘달맞이’ 일부(윤석중 작사 홍난파 작곡)

목걸이는 감꽃 말고도 앵두로도 만들었다. 이 맘 때면 푸른 잎새 속에 새빨간 앵두가 탐스럽게 익었다. 이걸 실에 꿰면 귀중품 못지 않은 훌륭한 목걸이가 됐다. 머리감은 수양버들이 남실남실 흔들리면 괜히 신이 난 검둥개도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오월의 풍경이다.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에서 마틸드는 친구에게 빌린 비싼 목걸이를 잃어버려 10년 동안 청춘을 다 바쳐 죽을 고생을 한다. 그러나 그 목걸이는 가짜였다. 그러나 감꽃 목걸이와 앵두 목걸이는 작년에도 있었고 올해도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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